20세기 초 헨리 포드가 '모델T'를 대량생산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가 개막했다. 이후 자동차는 이동거리 확장의 수단이자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 혹은 운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100년 넘게 이어져온 이 같은 자동차의 성격이 최근 근본적으로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IT기술과 대체 에너지 발전 등에 힘입어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자동차, 운전자가 사라지는 자율주행차, 휘발유 대신 전기로 달리는 친환경자동차 등이 자동차 시대의 새로운 장을 여는 분위기다. 과연 미래의 자동차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또 우리 생활상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4차례로 나눠 살펴본다.(편집자)
충전 중인 테슬라 전기차. 사진/뉴시스·신화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자동차회사는 미국의 전기차 제조업체인 테슬라가 아닐까 싶다. 테슬라의 고급 전기차인 '모델S'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만 2만5000대가 넘게 팔렸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벤츠 S클래스의 판매량(약 2만2000대)를 뛰어넘으면서 7만5000달러가 넘는 자동차 중 가장 많이 팔린 차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까지 도로 위에서 전기차를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전 세계에 있는 자동차 10억대 중 전기차는 0.1%, 100만대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전기차의 주요 부품인 배터리 가격이 크게 내리고 전기차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도 늘고 있어 전기차 확산을 위한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자동차 산업는 물론 에너지 분야에서도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될 전망이다.
전기차 시장, 연평균 30~50% 고성장
전기차 시장의 크기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성장 속도는 눈부시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 '대중화 시동 건 전기차'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약 20만대에 불과했던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은 2014년 50% 성장하며 30만대를 넘어섰다. 작년에는 100%가 넘는 성장세를 보이며 60만대 이상으로 확대됐다. UBS 등은 향후 5년간 세계 전기차 시장이 연평균 30~50%의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전기차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곳은 중국이다.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생산량은 34만대, 판매량은 31만대를 기록하며 모두 한 해 전보다 3배 넘게 성장했다. 올해 중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작년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실제로 지난 1~2월 생산·판매량이 전년대비 1.7배 성장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전기차에 대한 세금 면제 등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중국 전기차 시장은 당분간 고속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은 11만6000대 수준으로 12만대가 넘었던 2014년에 비해 5% 넘게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전기차 구매가 줄어든 것이다. 다만 올 1,2월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동월대비 증가세를 보이며 점차 시장이 회복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 2012년 2254대에 불과했던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해에는 2만8188대로 10배 이상 커졌다.
3만달러대 전기차로 대중화 '성큼'
기술 발전으로 전기차 가격이 하락하면서 확산 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22년이면 순수 전기차의 구매·유지비용이 휘발유차보다 낮아지고, 2040년이면 전기차 가격이 현재 기준 2만2000달러선으로 내려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2040년에 판매되는 신차의 35%가 전기차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비싼 전기차의 주범인 배터리 가격은 이미 크게 떨어졌다. 지난 2005년 셀 기준으로 kWh당 1500달러가 넘었던 전기차용 전지 가격은 지난해에 300~400달러로 떨어졌고 최근에는 200달러 선도 깨졌다. 앞으로도 2020년까지 연평균 15~20%씩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제너럴모터스(GM)와 테슬라는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300㎞ 이상이고 가격은 3만달러 수준인 대중적 모델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GM이 공개한 볼트(Bolt)의 가격은 3만7500~3만9000달러 수준이고, 테슬라가 이달 말 공개할 예정인 '모델3' 가격도 3만5000달러선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8000~9000달러 정도의 보조금을 받는다면 실제 구매가격은 3만달러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기존 비슷한 가격대의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200㎞ 안팎에 불과해 효율적이지 못했고, 주행거리가 400㎞가 넘는 테슬라의 고급형 모델은 가격 7만달러를 훌쩍 넘겼던 것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모델이다.
김경연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에 가장 많이 판매되는 차량 가격대가 2만5000달러 수준으로 결국 전기차가 주류시장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2만5000~3만5000달러 대에서 기존 내연기관과 필적할 모델들이 나와야 한다"며 "GM과 테슬라의 행보는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1% 미만을 차지하는 전기차가 주류 시장으로 가는 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충전인프라·전력산업 변화 예고
전기차가 확산되면 충전과 관련된 인프라 및 전력 산업에도 큰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현재 북미와 유럽, 아시아 등 주요 지역에는 2014년 기준으로 약 100만기의 충전기가 보급돼 있는데 2020년이면 이 숫자가 누적기준 1200만기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충전 설비의 숫자는 전기차 업체들과 각국 정부가 나서면서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단 몇 분이면 주유가 끝나는 기존 휘발유차와 달리 전기차 충전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재 급속충전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는 곳은 역시 테슬라다. 테슬라는 단 20분이면 배터리의 절반을 충전할 수 있는 무료 급속충전소 '슈퍼 차저'를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친환경차 전문 웹사이트 그린카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1월 전세계 593개 지역에서 3439개 플러그가 운영되던 슈퍼 차저는 이달 611개 지역, 3600개 플러그로 늘었다.
또 다른 대안은 무선충전이다. 현재 전기차에 적용된 무선충전 기술은 정지된 상태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운행 중에도 무선충전이 가능한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미시가 지난 2014년부터 일부구간에서 무선충전 전기버스를 운영 중이며 영국 정부도 전기차 무선충전 기술을 시험 중이다.
전기차는 전력설비 산업의 지형도 바꿀 수 있다. 전력 공급자 입장에서는 전기차 충전이 한꺼번에 몰리더라도 전력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기차 충전을 관리·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충할 필요성이 커지게 된다. 전기차 충전에 대한 별도 요금이나 관리체계가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미 미국 등에서는 수년 전부터 전기차 충전을 위한 별도의 요금제가 운영되고 있다. 소비자도 전기차를 통해 전력 생산에 참여할 수 있다. 대형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자체가 분산형 전원인 만큼 전력망에 이상이 생길 경우 비상용 전원이나 발전소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전기가 쌀 때 저장했다 비쌀 때 판매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진짜 친환경인가?
각국 정부가 앞 다퉈 전기차 보급에 나서고 있는 데에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라는 원인이 크다. 하지만 전기차가 과연 '친환경 자동차'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이 진행 중이다. 순수 전기차는 휘발유차와 달리 운행 중에는 배기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 과정이나 주유 및 충전 과정 등을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지난 2014년 미 미네소타대 연구진이 조사한 결과 전기차가 석탄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충전해서 달릴 경우 휘발유차보다 3배 더 많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전기차 충전용 전력이 풍력이나 태양열, 천연가스 등으로 만들어질 경우에는 전기차가 환경오염을 덜 유발했다. 연구팀은 "클린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설비 없이 전기차를 보급하는 것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미경제연구소도 지난해 미국 내 전기차 운행에 따른 환경영향을 분석했는데 석탄발전비중이 높은 동부지역에서는 전기차가 환경오염을 훨씬 많이 유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틈을 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가 파고들고 있다. '프리우스'로 하이브리드 전기차의 시장을 개척했던 도요타는 올 초 제네바모터쇼에서 수소차 '미라이'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또 다른 일본의 자동차 회사 혼다도 수소차 '클래리티'를 선보였다. 수소차는 LPG차처럼 차 안에 수소탱크를 설치하고 여기에 주입한 수소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물 이외에 가스를 일절 배출하지 않고, 에너지 충전을 위해 화석연료를 태울 필요도 없어 진정한 친환경차로 꼽힌다. 휘발유차가 주유하듯이 탱크에 압축수소만 주입하면 돼 장시간의 충전을 필요로 하는 전기차보다 훨씬 편리하다. 다만 수소차의 경우 충전인프라가 전기차보다 훨씬 열악한 점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