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요한 크루이프가 세상을 떠난 날, 한국의 여당 대표가 당사에서 사라졌다. 설마설마 했는데 영도다리에 나타나 바람을 맞고 있었다. ‘옥새투쟁’인지 ‘옥쇄투쟁’인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번에야 말로 호언장담을 지키나 했다. 갖은 모욕을 당하고 쫓겨난 동지를 위해 마음먹고 대차게 싸우나 했지만, 결국 또 ‘30시간의 법칙’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저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로부터 ‘종북’의 칭호를 선사받는 영광과 함께 말이다.
하긴 모욕과 축출의 대상이 어디 비박 국회의원뿐이랴. 부하직원과 청와대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던 전직 복지부장관 진영은 야당의 공천을 받았고, 해외 출장 중에 면직을 당한 문화부장관 유진룡을 잊기도 전에 다시 문화부 1차관과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쫓겨났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며 짜증을 냈지만, 당사자들을 취재한 언론은 대통령이 보고 싶어 하던 프랑스 명품 전시를 거절한 탓이 크다고 알렸다. 대충 밖에서 보면 같은 편일 것 같은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 웃지 못 할 사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누가 뭐래도 저들은 최고존엄의 심기를 거스르다 다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헌법과 법률이야 어떻든, 권력분립도 사치고 적법절차는 더욱 건방진 얘기다. 구속의 위기까지 갔다 살아나 ‘정윤횟집’과 ‘십상스시’의 상호를 고민했다는 조응천의 고사도 있었지만, ‘무대와 공주’라고 이름 붙은 기사(동아일보, 2013. 5. 25.)를 보면 우리 눈앞에 벌어진 현실이 더욱 당연하다.
김무성의 부친 김용주는 1960년 제5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참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 일어난 박정희의 쿠데타로 몇 달만에 의원생활을 접고 낙향해야 했다. 그 기억으로 “우리 가족이 박정희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던 김무성은 김영삼의 비서를 거쳐 결국 박근혜와 인연을 맺기에 이른다. 대체 무슨 욕심이 그를 거기로 이끌었을까.
박근혜 한나라당의 사무총장에 이어 2007년 이명박과 벌인 경선 캠프 좌장까지 맡았던 김무성이지만 박근혜의 ‘공주 의식’만은 못 견뎌 했다고 한다. 그러다 기자들에게 “너거, 박근혜가 제일 잘 쓰는 말이 뭔지 아나?”고 물었다는 답이 화제였다.
‘원칙, 신뢰, 약속’ 아니냐며 머뭇거리는 기자들에게 김무성은, “하극상이다, 하극상! 박근혜가 초선으로 당 부총재를 했는데 선수(選數)도 많고 나이도 많은 의원들이 자기를 비판하니까 ‘하극상 아니냐’고 화를 내더라. 그만큼 서열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그 다음으로 잘 쓰는 말이 ‘색출하세요!’다, 색출…. 언론에 자기 얘기가 나가면 누가 발설했는지 색출하라는 말이다. 그 다음이 ‘근절’이고… 하여간 영애(令愛) 의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말했단다.
처음 위 기사를 접했을 때 실소와 함께 많이 놀랐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놀랍지 않다. 하극상이란 말을 제일 잘 쓴다는 권력자에게 다른 소리를 하는 이는 말 그대로 항명을 하는 배신자일 뿐,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지 못할 테니까. 하물며 권력자 스스로 ‘진실한 사람’과 ‘배신자’를 지목하였는데도 그 뜻에 맞서 풍파를 일으킨 김무성의 말로는 이제 어떻게 될까.
이쯤에서 그저 축구를 잘한 선수만으로 기억될 수 없는, 축구 전술뿐 아니라 축구 지성사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크루이프의 어록을 생각해 본다. “선수가 경기 중 공으로 저글링을 하면 수비수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을 얻게 된다. 팬들은 그가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선수는 서커스단에 가야 한다.” 그렇다면 영도로 튀어나간 김무성의 행동은 불필요한 저글링일까, 고급 기술일까? 결국 그가 가야할 곳은 서커스단일까, 국회일까?
“리더답지 못한 선수들은 실수 뒤에 상대방을 때려 부수려 한다. 진짜 선두 주자는 다른 이들이 운동장에서 실수할 것을 미리 생각한다.” 그렇다면 박근혜와 김무성은 서로 실수를 기다려 상대를 부술 수 있을까? “나는 선수였고, 기술고문이었고, 코치였고, 감독이었고, 명예회장이었다. 멋있기는 한데 모두 사멸하는 것이다.” 과연 박근혜와 김무성은 그 모든 것의 사멸을 막을 수 있으리라 믿을까?
크루이프는 나아가 “결과 없는 내용은 맹탕이고, 내용 없는 결과는 지루하다.”고 짚었다. 자, 그렇다면 총선 전후를 통해 벌어질 권력투쟁의 결과는 어떨까. “공은 하나다. 그것을 잡아야 한다.” 과연 누가 공을 잡을까? 유권자들은 그저 눈으로만 공을 쫓는 관중일까, 자신을 모욕한 권력과 정치로부터 공을 빼앗을 수 있는 심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