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 쌍곡선' 이대호-김현수, 결국 실력이 답이다

빅리그, 성적이 곧 경쟁력…부진하면 곧바로 도태

입력 : 2016-03-30 오후 2:17:32
[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주어진 기회는 다르지 않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이대호(시애틀 매리너스)와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마이너리그 계약을 받아들인 이대호는 바늘구멍 같이 좁아보이던 메이저리그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으나 메이저 계약을 맺은 김현수는 생각지도 못한 마이너로 내려가야 할 위기다. 오로지 실력만 보는 빅리그의 냉정한 잣대에 두 선수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최근 김현수의 마이너리그행에 관한 이야기로 뜨겁다. 김현수가 보여준 스프링캠프 부진에 실망한 볼티모어 구단이 애초 보장한 메이저리그 개막 25인 명단 진입 대신 마이너리그행을 권유하고 있다는 게 주요 골자다. 댄 듀켓 볼티모어 단장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30일(한국시간) "김현수가 25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는다. 마이너리그행과 관련해 그와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벅 쇼월터 볼티모어 감독도 "김현수가 트리플 A로 내려가 적응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말하며 25인 명단 제외를 기정사실화했다.
 
볼티모어 구단은 현지 언론을 거쳐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는 김현수에게 스스로 그 권리를 포기하고 마이너리그에서 실력을 보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애초 선수에게 보장한 계약 사항을 뒤집는 상식밖의 일이지만 최상의 전력을 위해선 뭐든지 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생리를 생각한다면 이해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이는 곧 그만큼 김현수가 볼티모어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방증이다.
 
구단에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김현수의 최근 성적은 좋지 못했다. 시범경기 16경기에 나섰지만, 타율 1할 8푼 2리(44타수 8안타) 2타점에 그쳤고 2루타 이상의 장타는 하나도 없다. 시범경기 개막 후 21타수 연속 무안타 이후 점점 살아나는 듯했으나 다시 침묵에 빠졌다. 타격 외에 좌익수 수비와 주루에서도 기대 이하란 평가다. 반면, 김현수의 좌익수 경쟁자 조이 리카드는 타율 3할 9푼(59타수 23안타)으로 펄펄 날고 있다. 최상의 전력을 원하는 볼티모어로선 당장만 놓고 보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린 셈이다.
 
볼티모어와 2년 700만달러(약 81억원)에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은 김현수지만 이젠 메이저리그로 올라가기 위해 끝까지 버티느냐 아니면 구단이 원하는 마이너리그행을 받아들이느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마이너리그 거부권 조항까지 집어넣으며 메이저리그만을 바라본 계약 당시를 생각할 때 입지가 너무 초라해졌다. 현지 언론에선 볼티모어와 계약 파기 후 국내 복귀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었다. 
 
반면, 이대호는 지난 28일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 포함을 확정했다. 이대호의 경쟁자였던 헤수스 몬테로(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스테판 로메로는 각각 방출과 마이너리그행으로 팀을 떠났다. 이대호는 주전인 아담 린드를 보좌할 백업 1루수 자리를 예약했다. 시범경기 타율 2할 3푼 4리(47타수 11안타) 1홈런 4타점을 기록한 이대호는 타율은 높지 않지만, 주루와 수비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이대호는 지난달 초 시애틀과 계약 당시 메이저리그 계약이 아닌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입성에 따라 보장 금액이 다른 스플릿 계약을 체결했다.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도 오르지 못한 채 스프링캠프에도 초청 선수 자격으로 어렵게 참가했다. 한 해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가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진입할 확률은 손에 꼽을 정도지만 이대호는 이 낮은 확률을 현실로 만들었다. 시애틀 구단 스스로 이대호의 실력이 빅리그에서 통한다는 확신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력으로 모든 악조건을 뚫은 이대호다.
 
메이저리그는 매 순간 수많은 경쟁자와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해마다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이번에 둘의 희비가 엇갈렸지만, 다음 달 초로 다가온 빅리그 개막 이후 다시 입지가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결국, 시즌 내내 오로지 실력으로 답해야 한다. 이번에 구단의 인정을 받았다면 이를 꾸준한 활약으로 계속 증명해야 하고 이번에 실망스러운 성적을 안겼다면 절치부심해 실력으로 다시 구단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냉혹한 빅리그 현실에서 성적은 경쟁력 아니면 도태를 의미한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이대호가 지난 16일 LA 에인절스와 시범경기에서 1회초 1타점 적시타를 터뜨리고 있다. 사진/AP·뉴시스
 
김현수(왼쪽)가 지난 16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시범경기에서 1회초 삼진을 당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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