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오리온, 추일승식 '포워드 농구'로 우뚝

마침내 우승 일군 추일승 감독 "노력한다면 우승 못해도 부끄럽지 않다"

입력 : 2016-03-30 오후 2:27:55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고양 오리온이 올 시즌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정상에 우뚝 섰다. 꾸준히 자신의 전술을 개척한 추일승 감독 특유의 '포워드 농구'가 끝내 열매를 맺었다.
 

오리온은 29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전주 KCC120-86으로 크게 따돌렸다. 챔피언결정전 최종 전적 42패를 기록하며 2001-2002시즌 대구 연고지 시절 이후 팀 통산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또 오리온은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와 우승까지 이룬 역대 네 번째 팀이 됐다. 추일승 감독은 4강전에서 '강호' 울산 모비스를 꺾을 때부터 우승을 직감했다고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전문가 예상 벗어난 4명의 '포워드 농구'

 

오리온의 우승은 예상을 벗어난 결과다. 오리온과 KCC의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KCC의 우세를 점쳤다. 221cm의 하승진이 버티고 있으며 '득점 기계' 안드레 에밋과 전태풍 등이 물샐틈없이 경기운영을 해 나간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추일승 감독이 꾸준히 준비해 온 '포워드 농구'가 빛을 발했다주전 포워드 김동욱은 챔피언결정전 6경기 동안 에밋을 함정 수비로 몰아넣으면서도 평균 12.7득점 3.8리바운드를 올렸다. 여기에 문태종, 이승현, 허일영, 최진수, 김강선, 김도수 등 모두 190cm 후반대의 키를 가진 선수들이 골밑 플레이부터 외곽슛까지 소화하며 KCC 수비진을 무너트렸다. 키가 큰 하승진은 이들의 빠르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높이를 바탕으로 한 경기력에 무너지고 말았다.

 

네 명의 포워드를 활용한 추일승 감독은 전술 선택의 폭도 스스로 넓혔다. 추일승 감독은 선수들 출전시간을 고르게 배분하며 체력적인 면에서도 KCC에 우위를 보였다결국 포인트가드인 조 잭슨(180cm)과 이현민(174cm)을 제외하면 오히려 코트에 있는 네 명의 선수들이 신장에서도 KCC에 밀릴 것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 가운데 197cm의 이승현은 자기보다 24cm나 큰 하승진을 특유의 힘으로 막아서며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차지했다.

 

'비주류' 꼬리표 딛고 연구에 매진한 결과

 

끝내 정상을 맛본 추일승 감독의 포워드 농구는 철저한 연구의 산물이다. 추 감독은 지금은 사라진 홍익대학교 농구부를 거쳐 구단 주무부터 감독 자리까지 오른 이른바 '비주류 인사'. 술을 많이 마시는 농구계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더욱 실력으로만 경쟁하는 지도자로 여겨졌다.

 

20094월을 끝으로 부산 KTF(현 부산 kt) 감독에서 물러난 추일승 감독은 2010년부터 2011년까지 MBC ESPN 해설위원을 맡았다. 그러면서 추 감독은 틈틈이 해외 원서를 번역하고 유럽이나 미국 농구 여행을 떠나며 자신만의 농구 철학을 세웠다. 이를 두고 농구계 일각에서는 "우승 경험은 없지만 가장 노력하는 지도자"로 추일승 감독을 꼽고 있다.

 

그 결과물이 포인트가드 한 명을 제외한 네 명의 선수가 신장의 우위와 슈팅력을 살려 상대를 혼란에 빠트리는 포워드 농구다. '야인 시절' 추일승 감독이 언론에 기고한 칼럼 등에는 키가 크고 느린 센터 한 명을 쓰는 것보다는 빠르고 슈팅력까지 갖춘 적당한 높이의 선수들을 여럿 활용하는 게 낫다는 분석이 종종 나온다.

 

20113월 오리온에 부임한 추일승 감독은 이같은 연구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팀을 꾸리는 데 주력했다. 부임 직후 전체 3순위로 최진수를 뽑은 데 이어 김승현을 내보내고 김동욱을 데려왔다. 2013년에는 전태풍을 포함한 4명의 선수를 부산 kt에 내주고 장재석과 김도수 등을 영입했다. 특히 2014년에 신인 최대어로 분류된 이승현을 전체 1순위로 뽑는 행운까지 잡았다. 돌아보면 이들 모두 신장과 슈팅력을 갖춘 포워드다. 이렇게 완성된 오리온 특유의 '포워드 농구'로 추일승 감독은 감격스러운 첫 우승을 따냈다.

 

1997년 국군체육부대 농구단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프로농구 우승까지 19년이 걸린 셈이다.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추일승 감독은 "그동안 비주류에 우승이 없다는 지적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열심히 인생을 살았다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오히려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에 살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주류다. 그런 부분이 부끄럽지 않게 노력을 한다면 죽을 때까지 우승을 못하더라도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라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고양 오리온의 추일승 감독. 사진/KBL
 
◇2015-2016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고양 오리온 선수단. 사진/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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