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풀어쓰면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주인인가요? 20대인 우리는 정말 주권자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지난 31일 서울 합정동 아르떼홀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선거, 꼭 해야겠니?’ 라는 주제로 <선거파업>(안치용 지음) 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열렸다. 독립 대학생기자단 지속가능 바람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100여명의 대학생이 참여해 한국 정치에 관하여 진지하게 논의하였다.
북 콘서트는 <선거파업>의 저술에 참여한 9명의 전현직 바람 기자를 대표하여 지속가능 바람 편집장인 송은하씨(연세대 4년)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송씨는 “이미 왜곡되어 있는 선택지를 택하는 것. 그것을 통해 정말 우리가 주인된 목소리를 내는 게 가능할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고 청중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행사는 저술 참여 대학생 대표 발제, 청중과의 대화, 저자 강연, 저술 참여 대학생들의 오픈 세미나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보석, 노답, 너=나…
<선거파업> 북 콘서트 초반에는 민주주의와 투표를 주제로 청중과 대화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대화는 사전에 나눠준 종이와 펜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써 올려 보이면 사회자가 답변을 읽고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당신에게 민주주의란?’이라는 질문에는 ‘타자 없는 사회’, ‘국민이 주인’, ‘보석’, ‘노답’ 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너=나’라는 답을 쓴 참가자는 “최고 권력자에게 너와 내가 같다고 말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면 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가 ‘노답’이라고 답한 다른 참가자는 “단지 많은 사람의 의견이 모여 결정된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으며 지금의 민주주의가 노답이라고 생각해 이중적인 의미로 답했다”고 설명했다.
‘선거에 대한 첫 기억이나 선거를 앞둔 기분은?’이라는 추가 질문에는 ‘기대’, ‘설렘’, ‘나의 한 표의 영향력’과 같은 긍정적 답변과 함께, ‘주권 행사를 할 수 있어 좋았지만 몇 초 만에 끝나버렸다’, ‘해봤자 안 바뀜’같이 허탈함을 담은 답변도 많았다.
당연하게 받아들인 걸 의심해 볼 수 있었던 계기…
<선거파업> 저자인 안치용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교장의 강연이 끝난 뒤 저술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출연하는 오픈 세미나가 이어졌다. 이들은 모두에 발제한 송은하씨를 비롯해 김용재(성균관대 4학년), 박예람(성신여대 4학년), 서종민(한양대 4학년), 성지원(고려대 4학년), 송윤아(서울시립대 4학년), 정연지(연세대학교 4학년), 조응형(고려대 4학년), 조휴연(명지대 4학년) 등 총 9명으로 RA(리서치 어시스턴트) 겸 일종의 공저자로 저술에 참여했다.
한국은 민주사회가 아니라 계급사회다
“1장은 해방 이후로 해서 미국군 점령기부터 현 정권까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발전하거나 도태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며 1장 저술에 참여한 정연지씨가 소개했다. 조휴연씨는 “선거를 할 때 후보로 출마하는 사람들이 유권자들과 같은 계급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후보들이 우리랑 비슷하다고 말하면서 표를 얻고자 하는 부분에서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반(反)민주주의이다
2장은 민주주의 전반에 관한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분석이다. 2장 저술에 참여한 성지원씨는 “우리는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행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조응형씨는 청년 투표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투표를 통해 사람들은 실질적 이득보다는 정당 소속감과 정치적 효용감을 얻는다는데, 청년의 목소리를 내주는 정당이 없다”며 “이건 단지 정당의 문제가 아닌 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언급했다. 성씨는 “클로드 르포르라는 학자가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견디면서 살아가기를 동의한 상태’라고 설명한 것이 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명쾌한 설명이었다”고 말했다.
대의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의제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가?’를 알아보고 싶었다는 송윤아씨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을 통해 과두정치에서 쓰이던 대의제가 어떻게 민주정치의 핵심이랄 수 있는 추첨제를 대신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김용재씨는 “주권을 모든 국민이 개인적으로 행사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대의제가 나온 건데, 우리는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행한다고 생각한다”며 “과연 대의제와 민주주의를 등치시킬 수 있는 건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만이 희망이다
마지막으로 대안을 제시하였다. 서종민씨는 허쉬만의 ‘Exit과 Voice를 이야기하며 “불만이 생기면 이탈하고 항의할 수 있는 시장과는 달리 국적이 정해져 태어나는 것처럼 정치에서 Exit(이탈)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침묵할 것인가 Voice(목소리)를 낼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파업>에서는 Voice를 내기 위해 혹은 Voice를 통해 추첨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 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를 결합한 새로운 ‘민주주의 믹스’를 안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년의 열띤 정치토론의 장
북 콘서트는 예상한 시간을 넘기며 진행되었지만 청중의 참여는 계속되었다. ‘탄핵소추권’, ‘심의민주주의’ 등을 주제로 민주주의에 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북 콘서트에 참가한 성민진씨(이화여대 3학년)는 “평소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 헬조선, N포세대같은 말이 청년세대를 대변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며 “처음에는 <선거파업>의 핵심주장의 하나인 추첨제를 듣고 당황했지만, 그 원리를 들으며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수단이라는 데에 동의했다”고 북 콘서트 참여 소감을 밝혔다.
저술에 참여한 대학생이자 북 콘서트 준비팀의 일원인인 박예람씨는 “이번에 집필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선거를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공부를 통해 ‘우리는 정말 투표 때에만 동원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너무 당연하게 여기던 것에 대해 우리가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4·13총선을 앞두고 발간된 <선거파업>은 제목만으로는 불편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선거와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의미 있는 물음인 것만은 확실하다.
31일 아르떼홀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저자 안치용 소장(왼쪽 끝)과 저술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오픈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안 소장 다음부터 오른쪽으로 김용재, 성지원, 조휴연,서종민, 조응형, 박예람, 송은하, 송윤아, 정연지씨. 사진/남경지 KSRN기자
이윤 KSRN기자(www.ksr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