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씨남정기'·'기억', 현실을 대변하는 드라마

입력 : 2016-04-04 오후 1:06:55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한국 드라마에서는 무조건 사랑을 한다"는 웃지 못할 말이 있다. 극중 캐릭터가 어떤 직업을 가졌으며 어떤 상황에 놓였든 이야기의 흐름이 러브라인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을 비꼰 말이다. 하지만 최근 흔한 러브라인 대신 시대를 대변하는 이야기와 메시지로 시청자들과 만나는 드라마가 있어 눈길을 끈다. JTBC '욱씨남정기', tvN '기억'이 그 드라마다.
 
'욱씨남정기' 포스터. 사진/JTBC
 

'욱씨남정기'는 국내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로 대두되는 원·하청 기업 간의 갑을관계의 단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대기업 '황금화학'과 중소기업 '러블리 코스메틱'(러블리) 직원 간의 갈등을 다룬다. 특히 김환규(손종학 분) 상무는 전형적인 갑질을 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김 상무의 줄을 잡고 제품을 납품하려는 러블리 조동규(유재명 분) 사장은 철저한 을로 그려진다.

 

황금화학의 직원들 대부분이 갑의 마인드를 갖고 있으며, 러블리 직원들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식"이라며 아무 잘못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불공정한 계약을 당연히 여긴다. 갑이 불리한 계약서를 들이밀고 을이 개발한 제품을 갈취해도, 을은 다음 계약을 맺기 위해 갑에게 접대를 한다. 이것이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을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그런 중에 러블리에 본부장으로 입사한 욱다정은 "불공정 계약과 싸우지 않으면 을은 갑의 밥으로 살아간다"며 황금화학과 전면적으로 맞선다. 접대 자리에서 도장을 찍은 계약서를 찢고 갑의 얼굴에 물을 끼얹는 욱다정의 모습은 비록 판타지에 가깝긴 하나 불합리한 현실에 속 시원한 한 방을 날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욱씨남정기'는 가벼운 톤의 작품으로 코믹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통렬한 풍자가 깃들어 있어 마냥 웃으면서 보기 힘들다.

 

'욱씨남정기'의 이형민 PD는 "'옆집에, 우리 실제 생활에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 법하다'고 시청자들이 느꼈으면 한다. 무거운 주제를 던지려는 생각은 없다. '갑은 변하지 않는다. 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다루는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억' 포스터. 사진/tvN

 

배우 이성민이 주연을 맡은 '기억'은 우리네 가장들의 슬픈 현실을 녹인 작품이다. 로펌 변호사로서 잘 나가던 가장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추락해가는 과정을 통해 삶을 통찰한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일터에서 잊지 말아야할 기억을 잊어버려 낭패에 빠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태석(이성민 분)은 일을 하면서도 전처 사이에서 낳은 죽은 아이에 대한 기억 때문에 괴로워한다. 태석의 아이를 뺑소니 친 채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승호(여회현 분)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의 아버지(전노민 분)는 아들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들 모두 아픈 기억 때문에 힘든 나날을 겪는다. 이렇듯 극중 인물들은 전쟁터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결국 자신에게 진정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비록 태석이 알츠하이머, 승호는 뺑소니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겪고 있지만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태석의 얼굴은 시청자들에게 자기 안의 슬픔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잊고 싶은 기억과 사투를 벌이는 이들의 모습 역시 우리네 삶의 거울로 다가온다.

 

'기억'의 박찬홍 PD는 "알츠하이머의 특징은 최근 기억은 잃어가지만 과거 기억은 또렷해진다는 데 있다. 우리 주변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들을 보면 고난을 당하는 순간 새로운 눈을 뜬다. 사소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발견한다. 그게 바로 기적인 것 같다. 고난 속에 피는 기쁨을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욱씨남정기'는 철저히 코믹적인데 반해 '기억'은 정극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두 드라마는 직장인들의 애환이라는 코드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면서 "인기를 끌었던 '미생'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욱씨남정기'는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생'을 다룬다면, '기억'은 '미생'의 시기를 겪어낸 중년 남성의 이야기다. '미생'의 횡과 종으로 뻗어나간 느낌으로 만들어진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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