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던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이 끝났다. ‘로맨스릴러’를 내세우던 그 드라마는 20대를 노리던 지금까지의 로맨스 드라마와 다소 달랐다. 연애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학내 인간관계와 심리 싸움, 그리고 매일이 바쁜 주인공 홍설의 생활을 보여주었다. 이 독특한 설정은 기존에 있었던 웹툰 때문이었다. 드라마의 원작 웹툰 <치즈인더트랩>은 ‘대학생의 심리 싸움’, ‘긴장감이 넘치는 로맨스’라는 소재로 젊은 여대생에게 많은 호응을 얻어 왔다.
작중 주인공 설이는 다소 예민한 성격을 가진 명문대 재학생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연이대학교’에서도 무려 경영대생이다. 그녀의 학교생활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생각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저학년 시절 과 내에서 ‘얼굴은 예쁘지만 무개념인’ 여자아이와 싸우느라 감정 소모를 하기도 하고, 이중적인 면모를 지닌 과 ‘킹카’ 선배(결국 설이의 남자친구가 되는)와 심리 싸움인지 로맨스인지 모를 줄다리기도 해야 한다. 설이가 생각해야 할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학년에 접어들면서 재무 학회에 가입했다. 지인에게 자료를 받아가며 성실히 공부한다. 작중 설이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족보도 미리 구해 공부하는 모범생이다. 적당히 옷을 잘 입는 편이기도 하다. 절대 튀지 않는 대신 어딘가 세련되게 입는다. 이 때문에 한 친구가 자신을 그대로 따라 하는 웃지 못할 사건도 겪었다.
설이의 하루에서 대학생의 문제는 개인적인 수준에 그친다. 고민은 모두 연애나 인간관계, 학점과 미래 계획 등과 같은 사적 영역에 걸쳐있다. 사실 작중 설이네 학교의 배경이 되는 연세대학교 교정에는 거리 곳곳에 다양한 현수막이나 대자보가 있다. 교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라든가, 학내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폭로하는 글, 혹은 특정 시기마다 쟁점이 되는 사건에 대한 어떤 학생의 고민이 담긴 글 등이다. 아마 설이는 그 거리를 걸으며 한 번쯤 그 현수막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3월 8일 한겨레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현 2040세대는 2012년에 비해 더욱 삶에 불안감을 느끼며, 현실을 비관한다고 한다. 20대의 경우 4년 전 ‘희망이 크다’는 응답이 74.0%였으나 올해엔 ‘희망이 없다’는 선택지에 51.9%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엔 2040의 88.2%가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부정은 설이가 위치한 ‘20대 여성’이 90.1%로 가장 높았다. ‘부모의 지위에 관계없이 자녀도 계층 상승할 기회가 있는 개방적 사회에 가깝다’는 선택지에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은 22.0%에서 12.7%로 줄었다. 설이는 이런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을까?
그녀의 하루에는,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친구들이 생각하는 고민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정치 경제적 현안을 듣고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시간은 드물다. 민주혁명에 뛰어들었다던 과거의 대학생들이 보기에 설이는 무언가 이상할 테다. 그네들은 강의실 · 도서관 · 자기 집 밖으로 나와 사회에 제 목소리를 내었다. 최루탄도 맞고 고문도 당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그들에게 설이는 세상과 공명하려는 의지와 마음이 영 없는 아이다.
설이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당장 앞에 닥친 과제를 성실하게,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부모님의 일손을 거드는 것과 동시에 미래 계획도 충실히 이루어내고, 인간관계도 챙기려면 그런 곳에 시간을 쏟을 여유란 없다. 너무 힘들단 말이다. 게다가, 세상은 그때완 달라지지 않았는가? 그녀는 자신의 하루를 망가뜨리는 다양한 유형의 ‘선 넘는 사람’을 싫어한다. 제 앞날은 제가 챙기는 게 맞다.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자격증 목록을 작성해 적당한 시기에 시험을 등록하고 높은 점수를 위해 공부한다. 학회 경험도 필요하다. 재학생과 교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졸업생 선배가 제공하는 정보와 기회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대외활동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너가 안 하니까 남들 다 안 하는 것 같지?’ 강의실로 가는 길목이든 화장실 칸막이 위든 곳곳에 멋진 알파벳 이름을 가진 대외활동 모집 포스터가 널렸다.
그녀는 어여쁘다. 예민해서 다양한 사회적 룰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시간만 주어진다면 결국 가장 완벽한 형태로 말을 잘 들어낸다. 그것이 바람직한 상이냐는 질문은 우문(愚問)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서 그녀는 제 역할을 다 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어쩔 수 없이 드는 한 가지 의문. 설이는 대기업에 취직할까? 취업 포털 잡코리아의 2월 조사결과를 보면,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설문 응답 기업 240개 가운데 2016년 상반기에 대졸 신입 사원을 뽑는 기업은 86개사(35.8%)에 그쳤다. 이는 같은 기업의 작년 상반기 신입 사원 채용 규모에서 약 5%가 줄어든 수치다. 상황이 어떻든 설이로 대변되는 많은 학생들은 앞으로도 계속 어여쁘고 싶다. 그들의 하루는 오늘도 그렇게 채워질 것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