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맛.지도]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다, ‘선이네 가정식’

대학가/가능 사회

입력 : 2016-04-05 오후 6:46:21
경희대학교 앞 골목에 자리한 ‘선이네 가정식’. 사진/바람아시아
 
대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다. 당연히 밥은 밖에서 사먹는다. 방학이 되어 집에 가지 않는 이상 ‘집밥’을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사먹어도 원초적인 식욕만이 충족될 뿐 허전함이 남는다. 잘 먹은 음식물로 배 안은 꽉 차지만 애틋한 공허함은 오히려 깊어진다. 고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나와 살았지만 밥을 다 먹고 나서야만 찾아오는 허기에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선이네 가정식’은 경희대학교 앞 어느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간판에는 식탁에 잘 차려놓은 떡갈비 정식을 찍어놓은 사진이 붙어있다. 식당으로 들어가 밥을 먹어보기도 전이지만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딘가 익숙하다. 친숙함에 끌려 현관문을 열었다.
 
익숙한 반찬이 들어있을 것만 같은 냉장고. 사진/바람아시아
 
신발을 벗고서 고개를 드니 은색 냉장고가 눈에 들어온다. 열어보지 않아도 안에 무엇이 있을지 알 것만 같다. 오른편 냉장실에는 혼자 있을 때 알아서 밥을 챙겨먹으라고 어머니가 항상 만들어 놓으셨던 건오징어무침이 있을 테다. 밥 위에 올려 김에 싸먹으면 그것만으로도 맛있었는데. 허기진 배를 쓰다듬는다. 냉동실을 보니 여동생이 나중에 먹을 거라고 손도 대지 말라던 아이스크림이 떠오른다. 그런 건 또 몰래 남김없이 먹어줘야 제맛이다. 성질내며 달려드는 동생의 모습이 선하다.
 
떡갈비 가정식이 나왔다. 계란 ‘후라이’, 소세지 볶음, 김치, 생선구이, 콩나물무국 그리고 건오징어무침. 아까 봤던 냉장고를 보고 떠올랐던 여러 가지 반찬이 그대로 나왔다. 분명 냉동실에는 먹다 남긴 아이스크림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주방에 있는 분이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밥을 다 먹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방으로 가봤다.
 
포근한 미소를 머금은 한 아주머니가 분주히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네 보았다.
 
떡갈비 가정식 1인분. 사진/바람아시아
 
- ‘선이네 가정식’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해서 정하게 되었나?
“내가 식당을 맡기 전부터 이 이름을 사용했다. 굉장히 오래된 이름이다. 5~6년 전에 식당을 운영했던 사람이 그냥 ‘선이네 가정식’으로 했던 것 같다. 상호를 바꾸기도 그렇고 또 이름이 나쁘지 않아서 그대로 물려받았다.”- 떡갈비 가정식을 단일메뉴로 하고 있다. 떡갈비를 메뉴로 정한 이유가 있나? 가정식을 팔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떡갈비 메뉴도 이전에 하던 것을 그래도 이어받았다. 바꾸기도 그렇고 해서 계속 떡갈비를 팔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 가정식 백반집이 별로 없다.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가정식이 여기에서 잘 될 것 같기도 해서 떡갈비 가정식을 팔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마진이 굉장히 박하다. 사실 5000원에 팔고 있는데 반찬이나 밥이 부족하면 다 서비스로 더 준다. 조금 빠듯하긴 한데 진짜 많이 팔아야 이윤이 남는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학생을 상대로 장사를 하니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음식을 줄일 수도 없고, 그냥 가고 있는 거다.”
 
사진/바람아시아
 
- 장사를 하게 된 계기는?
“장사는 이전에도 원래 했었다. 우연한 기회로 여기를 소개받았다. 깔끔하게 학생들 상대로 술이나 음료수 없이 밥만 파니까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 식사 시간 때 일찍 오지 않으면 자리가 없어 먹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2시에 오면 자리가 없다. 아무래도 반찬도 그렇고 집밥 느낌이 나서 그런 것 같다. 사실 이전에 이런 밥장사를 안 해봐서 처음에 난감했다. 시작은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학생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떠올랐다. 그래서 된장국, 오징어국, 소고기무국, 미역국, 콩나물 김치국도 끓이고 그냥 나물도 무치고 어묵이나 맛살볶음도 만들었다. 학생들이 의외로 좋아하더라. 학생 위주니까 학생 입맛에 맞는 것으로 준비했다. 반찬이 이렇다 보니 가끔 어르신이 오시면 어쩔 줄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근처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오시는 분들도 있다. 10년 전부터 오고 있다는 분도 계신다.”
 
‘선이네 가정식’ 내부 모습. 사진/바람아시아
 
-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주방 안에만 있어서 학생들 얼굴을 잘 알지 못한다. 손님이 왔을 때 종업원이 몇 명이라고 말하면 그거 듣고 음식 준비만 하니 얼굴을 못 본다. 특별히 기억이 나는 건 잘 모르겠는데 식사하고 나가실 때 인사를 해주신다. 어르신도 가시면서 잘 먹었다고 말씀해주신다. 학생들도 왔다 갈 때 눈 마주치면 “이모 안녕하세요.”, “이모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해준다. 그러면 예쁘고 고맙다. 학생들 보면 그냥 다 고맙고 예쁘다. 처음에 가게를 시작했을 때 만날 “학생들 예뻐 죽겠다, 어찌 저렇게 예쁘나.”라고 했다. 자기네들이 밥 먹고 “고맙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러고 가니까 흐뭇하고 뿌듯했다. 일은 무지 힘들었다. 장사 시작하고 진짜 힘들었다. 많은 돈은 못 벌어도 지금은 재미있고 좋다.”
 
- 가게를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어떤 것이 있나?
“3년 전만 해도 장사가 잘 됐다. 재작년까지도 괜찮았다. 점심시간에 힘들어서 알바생도 쓰고 했다. 그런데 작년 봄에 학교 앞에 복합 상가가 생기고 식당이 많이 들어서면서 힘들어졌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나눠지다 보니 손님이 생각보다 많이 줄었다. 거의 30%넘게 줄었다. 둘이서 가게를 운영하기에도 조금 빠듯하다. 인건비도 제대로 안 나온다. 그래도 그냥 하던 것이니까 계속해서 하고는 있는데 사실 애로사항이 많다. 유지는 하는데 힘들게 하는 만큼 마진이 안 나온다. 어르신들이 식사하시고 나갈 때 “이렇게 싸게 팔아서 뭐가 남느냐”라고 꼭 한 마디씩 하신다.
 
아무래도 학교 앞이다 보니 방학 때가 제일 힘들다. 간신히 현상유지만 하는 정도다. 여름 2달. 겨울 2달 그리고 시험기간 합해서 따지고 보면 제대로 월급이 나오는 건 4개월밖에 안 된다. 우리 뿐 아니라 학교 근처는 어디나 방학 때 다 그렇다.”
 
- 떡갈비를 맛있게 만드는 방법이 있나?
“떡갈비는 외부 전문 업체에서 받아서 쓴다. 직접 가서 봤지만 위생 상태도 우수하고 또 전문적으로 만들어서 고기가 좋다. 다른 반찬은 직접 다 만든다. 국도 매일 끓인다. 반찬은 저녁에 준비했다가 다음날 아침에 와서 만든다. 소스도 직접 끓여서 제조한다. 떡갈비가 고기도 고기지만 소스도 중요하다.”
 
날짜별로 준비해야 할 반찬을 적어놓은 달력, 매번 바뀌는 반찬속에는 깊은 고뇌가 담겨있다. 사진/바람아시아
 
- 밑반찬이 바뀌는데 날마다 다르게 나오는 것인가?
“거의 매일 바뀐다. 식단을 달력에 적으면서 그날그날 만들 반찬을 생각해놓는다. 사실 반찬 신경 쓰는 게 너무 힘들다. 똑같은 거 내놓으면 편하니까 어떨 때는 안 하고 싶다. 근데 또 거의 매일 오시는 손님이 계시다. 일주일이면 거의 4번은 오시는 것 같다. 그래서 반찬을 안 바꿀 수가 없다.”

- 식당을 찾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글세, 뭐라고 말해야 하나. 나는 그냥 와주면 고맙다. 그러니 비싸게도 못 받는다. 가격을 올릴까 생각을 많이 했다. 500원이라도 올리면 나을 텐데. 그런데 학생들 주머니 사정이 솔직히 그렇지 않나. 학생들 주머니 가벼운 거 뻔히 아는데 가격을 올릴 수가 없었다.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순수하고 착하다. 들어와서 맛있게 먹고 인사하고 가는 게 정말 예쁘게 느껴졌다. 맛집이라고 인터넷에 글도 올려주던데 맛있게 먹고 글도 써주니 예쁘고 고마웠다.”
 
가족은 우리의 사랑이요 그리움입니다. 사진/바람아시아
 
밥을 먹기 위해 찾아오는 학생 얘기를 꺼낼 때마다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매번 반찬을 새로이 만들어야 하는 고충과 낮은 마진에도 쉽게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어려움을 견디고 있는 이유는 고향집 생각에 식당을 찾는 학생 때문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학생이 마주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냉장고 속에는 어느 집 식탁에나 올라오는 반찬으로 가득 찼다.
 
방학이 되어 집을 찾을 때마다 먹고 싶은 음식은 평소에 잘 먹어볼 수 없는 비싼 음식이나 언제 어디서나 시켜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아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앉았던, 이제는 많이 낮아져버린 밥상 위에 차려진 익숙한 반찬과 따뜻한 밥이면 된다. ‘선이네 가정식’은 고향집 생각으로 그리움에 허기진 학생을 이처럼 달래주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기록을 살펴봤다. 집에 전화를 안 한 지도 꽤 오래됐다. 어느새 통화음 끝에 들릴 반가운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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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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