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 뷰)세계는 지금 '정치 드라마' 베팅 열풍

브라질·아르헨티나 다음은 남아프리카공화국·말레이시아

입력 : 2016-04-24 오전 9:30:00
[뉴스토마토 유희석기자] 글로벌 자산가격이 고평가돼 있고 수익률은 떨어지면서 글로벌 자금이 '정치 드라마'에 베팅하고 있다. 최근 투자자들이 매력적인 투자처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정치 변화만으로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다만 정치적 이슈는 워낙 복잡하고 세계 경제 여건이 취약해 투자 위험은 매우 큰 것으로 지적된다.
 
24일 로이터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증시의 메르발지수는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를 두 달여 앞둔 9월 24일 9288.41이었으나 11월 20일 1만4173.87로 50% 넘게 폭등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22일까지 21%가량 올랐다. 올 초 4만2141.04로 출발한 브라질 보베스파지수도 이달 22일 5만2948.23으로 25% 상승했다.
 
MSCI신흥시장지수가 올해 7.1%, 미국 뉴욕증시의 S&P500지수가 3.8% 오른 것과 비교하면 이들 증시의 상승세가 돋보인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최근 정권 교체가 이뤄졌거나 곧 진행될 가능성이 큰 나라다. 경제 여건도 좋지 않은 편이어서 주가 상승이 매우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정권 교체 후 도입될 친시장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자금 유입의 원인으로 꼽는다.
 
지난 22일 지지자들과 인사하는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진/로이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모두 경제난을 겪고 있지만 새 지도자와 정책 변화에 대한 낙관론이 두 나라 증시와 채권시장을 상승시켰다고 지난 20일 보도했다.
 
아르헨티나에선 지난해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취임 직후 펼친 성장정책 덕분에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주 아르헨티나가 단행한 165억달러(한화 약 18조7600억원) 규모의 국채 발행에는 700억달러의 자금이 몰려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아르헨티나의 이번 국채 발행은 2001년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신흥국 중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아르헨티나 국채는 단 이틀 만에 가치가 오르며 투자자들에게 6억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안겨주며 기대에 부응했다.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부정부패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리면서 해외 투자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 브라질 하원은 지난 17일 대통령 탄핵안을 승인했으며 상원마저 통과하면 호세프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새로 들어설 정권은 친시장 정책을 펼칠 것이란 기대감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베네수엘라에서 16년 만에 우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해외 투자자금이 봇물 터지듯 유입됐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 채권 가격이 최고치로 치솟았다.
 
2014년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며 이들 나라의 증시가 몇 개월새 20%가량 상승했다. 이후에도 다른 신흥국 증시가 추락하는 가운데서도 양국 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WSJ는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말레이시아를 정치적 베팅 투자처로 꼽았다. 이들 나라는 브라질과 경제, 정치적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정치 지도자가 부패 혐의를 받고 있고 경제는 침체일로다. 남아공과 말레이시아는 자원 부국이면서 청년 인구가 많아 성장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산 가격도 저평가돼 있어 정권 교체 시 증시와 채권시장이 들썩일 수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불안한 신흥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매력적인 투자처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수의 시장이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 원자재 가격 등에 동조하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투자자들은 수익을 쫓아 투자 위험을 감수한다. 다른 말로 상황이 급반전하는 사건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아무리 불확실하더라도 승부를 거는 것이다.
 
새미 무아디 T로우 프라이스 신흥시장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투자자들이 촉매제를 가진 희귀한 스토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신흥시장의 정치적 이슈에 베팅하는 것은 투자 위험이 매우 커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 않으면 투자 심리가 쉽게 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새로 집권에 성공한 정권이 꼭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실제 남아공에서는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 공금 횡령 혐의로 야당에 의해 탄핵당했으나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정권을 유지했다. 주마 대통령의 집권당이 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말레이시아 나지브 라자크 총리도 막강한 여당 지지로 정치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 라자크 총리와 주마 대통령의 임기는 각각 2018년, 2019년이다.
 
친시장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발전보다는 전 정권의 과오를 수습하는 일이 더 급할 수도 있다. 브라질이 지난 9년 동안 쌓아 올린 부채는 1조달러에 달한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가 평가한 브라질의 국가 신용등급은 모두 '정크'(투자부적격)다. 지난해 브라질 경제는 3.8% 위축됐고 올해 전망도 우울하다. 정권 교체만으로 브라질 경제가 살아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 또한 “대통령이 바뀌어도 브라질 경제가 침체를 피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최소한 2018년까지 부정적 전망을 유지했다.
 
유희석 기자 heesu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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