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구조조정을 고리로 한 정부와 여야의 정책협의가 가동될 전망이다. 구조조정 이슈를 선점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앞으로도 논의의 주도권을 쥐고 정부와 조율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도 사안의 절박성을 고려해 야당과 적극 대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새누리당도 대화를 제안하고 나섰다.
여야와 정부가 생각하는 구조조정의 주안점이 다르다는 점에서 섣부른 기대는 아직 이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점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해 낼지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과연 기업 구조조정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한가? 국가미래연구원은 지난 3월 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와 공동으로 ‘부실기업 실태와 구조조정 방안’을 주제로 특별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발표는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자문위원과 하 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맡았으며 정용석 한국산업은행 구조조정부문 부행장, 이명순 금융위원회 구조개선정책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등이 토론했다. 주제발표와 토론 내용을 간추렸다. [편집자]
◇ “사전적·자발적 구조조정 중요” -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자문위원
2015년 3월 말 기준 기업부채 규모가 2347조원이고 그 가운데 한계기업의 부채가 21.2%를 차지하는데, 향후 금리를 인상하면 이자부담과 디폴트 위험의 증가로 기업부채발 경제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보면 2014년 한계기업의 비중이 전체 상장사의 31.3%를 차지했고, 2012~2014년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만성적 한계기업이 전 업종에 고루 퍼져 있으며, 만성적 한계기업 중 큰 기업은 대개 재벌그룹 계열사로 30대 그룹 중 17개 그룹이 좀비기업이다.
과거 부실은 상당 부분 유동성의 문제였으나 지금은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뉴노멀 시대에서 지급능력 문제가 크기 때문에 한계기업들은 탈출이 불가능하고, 영업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정상 기업들 역시 수비형 생존전략(현금보유 증가)으로 투자와 고용이 위축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한계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 부족으로 고용이 둔화되고, 한계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가격덤핑 등 불공정 경쟁으로 외부 비경제가 발생하며, 부실기업이 퇴출되지 않음으로써 산업 전체의 임금 수준과 자본가격이 상승해 정상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저해되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기업 오너와 강성 노조, 채권단 내 구조조정 메커니즘의 취약성, 정치논리에 따라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정부 등이 모두 구조조정 지연의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사전적·자발적 구조조정이 활발해지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시장의 압력이 활발해지도록 경영투명성을 제고하고, 사모펀드 규제 완화 등으로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며, 구조조정 시기를 놓친 오너에게 패널티를 부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
사후적(강제적)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법·제도와 절차는 상당히 갖추어진 만큼 제도보다 ‘운용’이 문제다. 정부가 모든 기업을 다 살리겠다는 인식에서 탈피해 최대한 시장에 맡기되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거대기업 구조조정의 경우는 미리 기준을 세워 집행하고, 필요하다면 확실한 시그널을 주어야 한다.
또 채권단은 이해당사자간 형평성 담보 방안을 마련해 협조체제를 깨는 게 이익이 되는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고, M&A 시장 활성화를 위해 외국자본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완화되어야 하며, 거시적 차원에서 산업재편의 큰 그림이 마련되어야 한다.
◇ “고통분담 주체와 명분이 중요” - 하 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기업 성장성의 주요 지표인 매출 증가율이 2014년에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1%)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했고(-1.5%), 대규모 기업집단의 부실징후 기업 비중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 증가 추세인 반면 양호기업의 비중은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기업도산과 워크아웃 사건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은 외부 수요부진이나 세계적 경기침체에 기인한 것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특히 개발시대의 수출·제조업 위주 체제에 안착한 채 국내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구축하고 각종 지원성 금융·세제·고용구조에 길들여진 대기업집단이 부단한 혁신과 경쟁력 향상을 소홀히 한 데 큰 원인이 있다.
구조조정 절차와 관련해 통합도산법상 회생 제도와 기촉법상 워크아웃 절차, 주채무계열 제도 등을 비교해 워크아웃이나 재무구조개선(주채무계열) 제도는 당사자간 합의를 통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목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지나치게 일방의 입장이 관철되면서 관치로 활용되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한편 법원 주도의 회생절차는 이해관계자들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많이 보장되고 법관의 신중한 판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나 법원의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이러한 구조조정 절차의 병존이 채무자의 선택을 확대하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기존 지배권 보전의 연장 수단으로 오용되어 더 큰 사회적 비효율을 야기하는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또 실제 통합도산법 절차에 따른 회생기업들과 기촉법상 워크아웃 기업들의 재무성과를 분석해 회생기업들의 경우 회생절차 개시 이후 약간 개선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낮은 수익성을 보이며 워크아웃 기업의 재무성과 역시 이와 유사하다.
생존분석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에서도 회생 기업의 경우 절차 개시 이후 2년 내에 종결되는 사례는 13% 미만에 불과하고, 4년이 경과해도 25% 정도의 기업만이 회생 절차에서 벗어나고 있다. 워크아웃 기업의 경우는 2년 내에 20% 가까운 수가 절차를 졸업하지만 그 이후로는 기간의 경과에 따른 성과가 특별히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조정의 부진은 사업재편을 위한 법이 없거나 관련 규제가 가로막기 때문이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기업의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작은 희생도 부담하지 않으려 하면서 비용을 사회화하거나 각종 지원에 의존해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다.
또 최근 일련의 상법 개정으로 다양한 구조조정·사업재편 수단들이 이미 허용되어 있고 원샷법까지 제정했으나 이를 남용하거나 규율 수단이 불충분하다는 점이 오히려 문제다. 따라서 제3자 배정을 통한 경영권 이전, 자기주식의 남용, 인적분할 및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이용한 지주사 전환 등 다양한 수단의 사업 재편이 가능하지만 최근의 실태는 경쟁력 강화보다는 경영권 확보·유지에 치우쳐 있다.
구조조정에 대한 본질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기업 실패로 인한 경제·사회적 결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편성하고 기업부실을 방조한 감독당국과 정책금융기관, 특수 관계인 및 사실상의 지배력 행사자 등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고용 충격과 사회안전망(실업급여 등) 등에 대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정확한 진단과 함께 고통 분담의 주체와 명분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희생을 받아들이는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사업 구조조정과 내부경쟁력 강화부터” - 정용석 한국산업은행 구조조정부문 부행장
기업이 사업 구조조정과 내부경쟁력 강화 등 선제적 대응을 통해 부실 요인을 사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 부실의 원인은 대외적인 여건 악화로 인한 일시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과 경쟁력의 취약이라는 구조적이고 내부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채권단 지원에도 불구하고 정상화 가능성이 낮아지는 추세에 있다.
따라서 향후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이 선제적으로 사업 구조조정과 내부경쟁력 강화 방안을 실행해 부실 요인을 사전적으로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춰 추진해야 한다. 또 채권자 구조 및 정상화 가능성 등 해당 기업이 처한 상황과 정상화 추진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최적의 구조조정 수단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워크아웃이나 회생절차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어서 어떤 제도가 구조조정에 적합한지는 선택의 문제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두 제도의 장점을 통합한 제3의 구조조정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구조조정 추진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 이명순 금융위원회 구조개선정책관
현행 기업구조조정촉진특별법은 대상 채권을 국내 금융기관 채권으로 한정함에 따라 효율성과 형평성 모두에서 문제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는 간접조달 비중이 감소하면서 채권은행 주도의 워크아웃에 한계가 있고, 특히 이로 인한 ‘죄수의 딜레마’, ‘무임승차’ 등 비효율이 발생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또 ‘형평성’ 측면에서는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자의적 차별로 인해 채권자 평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따라서 ‘신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워크아웃과 회생절차 등을 미개시한 부실징후 기업에 대한 채권금융기관의 조치 근거를 법에 명시해 사전적인 대응이 가능토록 했다. 특히 구조조정 추진 경과에 대한 정기적 평가·공개를 통해 구조조정 장기화에 따른 좀비기업 양산 방지 등의 효율성 제고를 제도화했다.
기존 통합도산법상의 기업 회생절차와 비교해 보면 신 기촉법상의 워크아웃은 우선 금융기관간 협의를 통해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므로 신속한 진행이 가능하고, 따라서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을 활발하게 추진할 수 있다.
또 일시적인 유동성 악화 기업의 회생에 적합한 제도로 하청업체?일반 상거래채권자 등과 정상적 영업거래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상거래 채권을 제외한 금융채권만을 조정하므로 경제적·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 “사회 전반 지배구조 바뀌어야” -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기업 구조조정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첫째 사회적인 문화의 문제다.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나 사업을 파는 것 등에 대해 문화적으로 거부감이 많다. 삼성이 방산과 화학을 한화에 팔 때 인수가격이 약 1조9000억원 정도 됐는데 그 위로금으로 한화가 3500억원을 지불했다. 인수가격의 15~20% 정도를 위로금으로 더 부담한 것이다. 왜 부담해야 하나?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다. 다시 말해 손익분담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이 확립돼야 한다.
두 번째로는 정리해고 요건이 너무 강화돼 있다. 일본의 제도를 베꼈는데 구조조정이 안 되는 나라의 제도를 복사했으니 구조조정이 안 되는 것은 뻔하다. 한화투자증권은 리테일사업본부가 적자를 많이 내서 자본금이 9000억원에서 7000억원으로 줄었다. 그래서 7명을 정리해고 했는데 재판이 벌어졌다. 이게 옳은 일인가? 세 번째는 경영진의 문제다. 소수지분으로 돈을 빼먹는 재미가 클 것이다.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구조조정을 하려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살릴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몫을 차지하느냐만을 따진다. 그러니 안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 지배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는 현대상선이 입주한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빌딩 로비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