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위대한 모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2학년 남동생이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자 어머니가 동생의 뒤를 따르겠다고 식음을 전폐했을 때였다. 남은 8남매를 생각해 제발 그만 털고 일어나라면서, “당신은 눈물이라도 흘릴 수 있어 좋겠다. 나는 그럴 수도 없으니”라고 애써 눈물을 삼키던 장면. 가장의 자리는 이렇게 막중한 것이었다. 자신이 흔들리면 10명의 식구가 동요하고 위기에 빠질 터이니 감정을 함부로 표출할 수 없었다. 대통령의 자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몇십배 더 무거울지도 모른다. 5000만의 한국인을 책임지는 최고통치자의 무게를 어찌 저울로 잴 수 있겠는가.
지난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45개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총선 패배로 술렁이는 정국을 진화하고 불통의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만든 자리였다. 그러나 간담회에 임하는 박 대통령 모습은 국가 원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주요 언론사 간부들의 귀중한 시간을 빌린 이 자리를 박 대통령은 자기 합리화와 넋두리를 늘어놓는 사랑방 정도로 밖에 이용하지 못했다. 총선 책임을 국회에 떠밀고, 국회가 발목을 잡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한이 남을 것 같다는 심정을 토로했고, 특정 의원을 겨냥해 배신의 정치에 비애를 느꼈다는 감정을 다시 발산했다.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왜 이렇게 활용하고 만 것일까. 그간의 국정운영을 총결산하고 남은 임기의 플랜을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정국을 이끄는 동력을 얻지 않았을까.
다른 나라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도 이러한 것일까?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 기자간담회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텔레비전 생방송에 나와 국민의 대리인인 기자 두 명과 국정 전반을 토론한다. 지난달 14일 공영 TV인 France2는 ‘시민과의 대화’(Dialogues Citoyens) 프로그램에 푸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초대해 두 명의 기자와 질문하고 답하는 기회를 가졌다. 올랑드 대통령은 뜨거운 이슈인 감세, 청년실업, 고용창출, 이민정책에 관해 질문을 받고 답변한 후 다시 반박이 나오면 방어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이민정책에 대한 올랑드 대통령의 답변에 여기자 레아 살라메가 “농담하지 말라”고 일축하는 장면도 있었다. 살라메의 행동에 대해 프랑스의 일부 언론은 ‘오늘날 프랑스의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논평했고, 미셸 사팽 재무부 장관은 대통령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행동이었다고 씁쓸해 했다. 특히 엘리제궁이 여기자의 공격에 수동적으로 대처한 대통령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자 올랑드 대통령은 “기자들을 때리는 것이 나의 역할은 아니다”라거나 “나는 공주를 게걸스럽게 먹는 식인귀가 아니다”라며 능숙한 유머로 받아 넘겼다. 프랑스의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는 한국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움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은 기자 앞에 군림할 수 없고,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반격 당한다.
한국도 지금의 기자간담회를 재고해봐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언론과의 요식행위를 과감히 청산하고 대통령은 텔레비전에 나와 진정한 소통의 정치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일부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간담회를 연 것 자체가 변화라며 큰 점수를 주었다. 하지만 어떤 내용을 들고 나와 어떻게 국민을 설득했는지에 중점을 둔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언론사의 바쁜 수석 기자들을 불러 모아 오찬이나 나누고 사랑방 담화를 나눈다면 이보다 더 큰 낭비가 어디 있겠는가. 형식적인 정치행위를 과감히 청산하고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실용주의적 경제 원칙을 정치에도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