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경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국빈방문을 계기로 우리 기업들은 무려 52조원 규모의 사업을 수주했다.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올 초 서방의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경제 제재가 이어졌던 지난 37년간 이란은 글로벌 경제의 음지에 있었다. 이란의 주요 재정 수입인 원유 수출이 급감했고 나라 곳간이 비면서 주요 인프라 시설에 대한 투자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같은 결핍은 오히려 이란 내 스타트업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이란판 아마존과 유튜브 등이 생겨났고 새로운 스타트업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포춘과 포브스 등 주요 외신은 앞으로 해외 자금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이란 스타트업의 봄"이 찾아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이란 내 스타트업이 급팽창하고 있다. 이란의 IT전문 언론 테크라사(TechRasa)에 따르면 현재 수도 테헤란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타트업만 400곳이 넘는다. 포브스는 지난 석달간 이란 전역에서 생긴 스타트업만 200곳이 넘는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초 스타트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이란은 앞으로 스타트업이 더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두 번째 경제대국이면서 높은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갖춘 인재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37년만에 서방의 경제제재가 사라지면서 세계 각국의 투자자금도 이란으로 쏟아지고 있다.
벤처캐피탈·스타트업 엑셀레이터 '활발'
현재 이란에서는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기관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바텍(Avatech)은 이란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엑셀레이터다. 벤처캐피탈(VC) 사라반의 투자로 세워졌으며 오는 2018년까지 스타트업 100곳을 키워낸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매년 두 차례씩 6개월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2개월이 소요되는 프리엑셀레이션(pre-acceleration·사전육성) 단계에서 20팀을 선정한 뒤 4개월짜리 엑셀레이션(acceleration·육성) 단계에서 최종 10팀을 추려 키우고 추가 자금조달을 위한 데모데이를 지원한다.
지난해 11월에 열렸던 아바텍의 데모데이 행사 모습. 사진/아바텍
아바텍의 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된 스타트업은 멘토십과 업무공간, 창업훈련, 네트워킹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최대 8000달러 상당의 투자금도 받을 수 있다. 이란의 경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7000만달러 수준으로 8000달러의 투자금도 적은 편은 아니다. 아바텍은 투자에 대한 대가로 해당 스타트업의 지분을 최대 15%까지 받게 된다. 지난 2014년10월 첫 라운드를 시작한 이후 30여곳의 스타트업이 아바텍을 졸업했다.
현재 이란에는 아바텍 이외에도 복합투자기업인 아미디투자그룹이 운영하는 엑셀레이터 프로그램 '디몬드(DMOND)'와 이란의 대표 기술기업인 FANAP이 운영중인 '트리그업(TrigUp)', 샤리프공대와 연계한 '세탁(Setak)' 등 다양한 스타트업 엑셀레이터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아마존·구글 빈자리 스타트업이 채워
구글이나 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이 제재 때문에 이란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이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토종 기업들이 이란 시장에서 자리를 잡게 됐다. 경제 재제와 정부의 통제가 서구 기업과의 경쟁을 막는 일종의 보호 장벽이 된 것이다.
디지카라(Digikala)는 이란판 아마존으로 불리는 온라인쇼핑 업체다. 쌍둥이 형제인 하미드 모하메드와 사이드 모하메드가 사라반의 투자를 받아 지난 2006년 설립했다. 당시 온라인으로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려던 형제는 페르시아어를 이용하는 마땅한 사이트가 없다는 점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디지카라는 설립 8년만에 직원을 900명으로 확장했으며 취급 품목도 전자제품에서 주방용품, 공예품 등으로 넓혔다. 1일 주문량만 1만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디지카라는 이란 내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웹페이지다. 포춘은 디지카라의 기업가치가 5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디지카라 홈페이지
이란판 구글 앱스토어도 있다. 샤리프공대 학생이던 하산 아르만데히와 레자 모하메드는 지난 2010년 앱스토어인 카페바자르(Cafe Bazzar)를 만들었다. 구글의 공식 앱스토어가 경제 제재 때문에 이란에서 서비스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착안해 회사를 세운 것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앱과 이란 앱을 함께 다루면서 이란의 IT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페바자르의 기업가치는 약 2000만달러(2014년 기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라트(Aprat)는 디지카라, 카페바자르와 함께 이란의 3대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기업이다.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기업가치는 지난 2014년 기준으로 3000만달러로 추산됐다. 유튜브 역시 이란에서는 차단된 사이트다. 아파라트는 현재 이란 내에서 방문자가 6번째로 많은 웹사이트로 매달 2500만명이 사이트에 방문하고 있다. 하루에 재생되는 비디오만 600만건이 넘는다. 아파라트는 지난 2월 이란 총선 당시 정치적 이슈의 장으로 부각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아파라트를 이끌고 있는 모하메드 자바 샤쿠리 모하담은 "이란에 유튜브가 있었다면 (아파라트) 창업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큰 경제규모·높은 교육열 기반으로 도약
포브스는 이란의 경우 앞으로도 스타트업이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힘은 역시 큰 경제규모다. 이란은 37년간 지속된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MENA 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유지해왔다. GDP는 4000억달러 규모고 인구는 8000만명에 달한다. 경제의 원유 의존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전체 GDP 대비 10%에 불과하다. 뒤집어보면 석유 이외에도 다양한 산업이 성장할 기반이 마련돼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 불확실성도 많이 걷힌 상태다. 지난 2월말 열렸던 총선에서는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개혁파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향후 개혁·개방도 원활하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제6차 국가개발계획'을 통해 향후 5년간 연평균 8%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 목표에는 못 미치더라도 연평균 4%대의 견조한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전망이다. 지난 2012년 -6.6%, 지난해 0% 성장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경제제재 해제 등의 영향으로 큰 폭의 성장이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란은 교육열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이란에서 대학교육을 받는 인구 비중은 교육수준이 높은 요르단이나 이스라엘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8000만명에 달하는 이란 인구의 3분의2가 35세 이하 젊은층이며 이들은 윗세대보다 훨씬 많은 교육을 받고 있다. IT기술이나 공학에 대한 관심도 높다. 포춘에 따르면 이란은 전 세계에서 공과대학 졸업자의 비중이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다. 이란 최고의 공과대학으로 꼽히는 샤리프공대는 최근 영국의 타임즈고등교육이 발표한 '2016 신흥대학 순위'에서 100위에 올랐다. 150위권에는 이스파한공대도 이름을 올렸다. 이란 정부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 인구는 전체의 절반인 4700만명으로 인터넷 보급률도 높은 편이다.
올 초 경제재제가 해제되면서 해외 VC나 엔젤투자자의 자금을 유치할 수 있게된 점도 이란 스타트업에는 호재다. 이란에서 소셜커머스업체 타흐피판닷컴(Takhfifan.com)을 이끌고 있는 나자닌 다네슈바르는 최근 CNN머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5년간 회사를 이끌면서 이란을 찾은 해외 VC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최근 두 달 동안은 여러 해외 VC를 맞느라 바빴다"며 "특히 유럽 쪽 자금이 이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폐쇄성·취약한 기술력은 극복해야
다만 아직 남아있는 사회적 폐쇄성은 기업 활동에 제약이 되고 있다. CNN은 "이란 정부는 여전히 인터넷에 대해서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정부와 종교지도자 사이의 충돌 때문에 검열이 남아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지난 총선 당시 로하니 대통령은 인터넷 서비스의 자유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슬람적이지 않은' 콘텐츠를 차단해야 한다는 종교계 및 의회에 반대에 부딪히며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란 스타트업들의 취약한 기술력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다. 경제제재와 고립은 스타트업의 수월한 성장을 도왔지만 신기술의 유입도 막았다. 객관적인 기술력이 글로벌 업체에 비해 뒤쳐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경제제재의 빗장이 풀리면서 글로벌 업체와의 경쟁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포춘은 이란 스타트업 CEO를 인용해 "실리콘밸리와 비교해 이란은 10년 뒤처져 있다"며 기업가들이 서구의 사업표준에 맞는 사고방식이나 윤리적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은 투자유치나 사업 확장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