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정부와 한국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법론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구조조정 힘 실어주기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5조~10조원의 자본확충 규모로는 조선 해운업에 대한 국책은행의 충당금 해소에만 기여하는 수준이며, 이마저도 현실화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라는 것이다. 또 그간 국책은행을 믿고 취약업종에 자금을 지원한 시중은행들은 형평성 논란에 어긋난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지난주 1차 자본확충 TF 회의에 이어 2차 회의 개최 여부를 두고 실무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협의체는 구체적인 자본확충 방법을 상반기 내에 결정하기로 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국책은행 자본 확충 규모가 최소 5조원에서 최대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자본확충 필요성에 합의하고 있지만 각론에서는 여전히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한은의 역할론을 강조하는 반면 한은은 발권력 동원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한은의 발권력과 정부의 재정부담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부담을 지울지에 대한 결론은 단기적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은행권에서는 자본확충 규모가 최대 10조원에 달하더라도 겨우 충당금 적립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구조조정 대상 기업 여신을 실질에 맞게 재분류할 경우 국책은행은 최소 2조5000억원, 최대 6조6000억원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해운, 조선업 전체로 확대하면 충당금 규모는 최대 9조원에 이른다.
삼성선물도 보고서에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이 시중은행 수준으로 충당금을 적립하려면 7조2730억원(산업은행 4조7450억원, 수출입은행 2조5280억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하나금융투자의 경우 대우조선해양·한진중공업·현대상선·한진해운·창명해운 등 5개 조선·해운사에 빌려준 자금을 부실 대출로 분류하고 조선·해운업종 여신을 합치면 국책은행이 추가로 쌓을 충당금 규모가 최대 9조원, 시중은행은 2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 민간연구기관 전문가는 "장기적으로 국책은행에 출자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는다는 의미에서는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몇 조원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휠씬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자본 확충 등으로 국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에 다시 힘을 실어주기 이전에 과거 구조조정 역할에 대한 국책은행의 실기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시중은행들은 형평성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채권단 대부분이 산은, 수은 등 국책은행으로 이들의 감시, 관리 능력 부족이 이번 부실기업 사태에서 드러났는데 또다시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건 뒤로하고 지원하려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산은의 자회사(대우조선해양 등) 관리책임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진행하고 있고, 현재 마무리 단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반 은행들은 국책은행을 바라보고 조선 해운 등 취약업종에 돈을 댔는데 국책은행만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국책은행과 같이 특수은행으로 분류되는 농협은행은 여신 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당분간 대기업 신규 대출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여전히 금융당국의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는 신용경색에 대해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경제 전반에 대한 무차별적 구조조정으로 오인되는 경우 은행들이 연쇄적인 기업 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고, 멀쩡한 기업도 쓰러뜨리는 결과(흑자도산)를 야기할 수 있다"며 "구조조정 추진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금융기관이 어딘지 밝혀 뱅크런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조건부 자율협약을 결의한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빌딩 로비를 직원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