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수주 전략 이렇게)①"기대감 보다 실익으로 접근해야"

저가수주 악순환 끊으려면 수익성 중심 수주 활동 펼칠 필요
경쟁심리 이용한 단가 후려치기 등 경계

입력 : 2016-05-17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국빈 방문을 계기로 국내 건설사들의 대규모 수주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대통령과 함께 이란으로 건너갔던 건설사들이 체결한 계약은 총 66건, 371억달러(약 43조원) 규모다. 중동 시장을 만회하고 침체에 빠진 건설업계의 회복을 위한 발판으로 충분한 물량이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단 본 계약 체결까지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하고 국책은행의 파이낸싱 지원도 반드시 뒷받침 돼야 가능한 수치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중국, 일본, 유럽, 미국 등 경제제재가 해제된 이란 시장을 공략하려는 경쟁국들의 추격도 극복해야 한다.
 
이란 시장이 국내 건설사에게 기회임은 분명하지만 역으로 스스로를 옭아맬 수 있는 덫이 될 수도 있다. 성공적인 시장 공략을 위한 진지한 해법을 모색해 볼 때다. [편집자주]
 
최근 이란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은 건설사들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지에서 체결한 도로, 철도, 플랜트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대한 후속조치에 여념이 없다. 최근 몇년 사이 의존도가 높았던 중동지역 수주가 절반으로 감소하면서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상한 이란 시장에 기대감이 높아진 탓이다.
 
청와대는 이란 인프라 건설과 에너지 재건 등 30개 프로젝트의 양해각서·가계약 체결 등을 통해 확보한 수주 가능 금액을 371억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사업의 2단계 공사까지 포함하면 최대 456억달러까지 수주금액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어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이란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면 2025년까지 10년간 수출은 845억달러 늘고 일자리는 68만개가 창출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이란 특수를 과도하게 띄우고 있다 지적도 있지만, 침체에 빠진 건설업계에 희망인 점은 분명하다.
 
다만 이번에 체결한 수많은 MOU나 MOA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앞으로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은 불안한 요소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유럽 등 경쟁국들도 이란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면서 이란 정부와 공기업들이 경쟁을 통해 무리하게 단가를 낮추려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지난 8일(현지시간) 이란의 한 언론에 따르면 이란 건설 분야 공기업 CDTIC의 알리 누르자드 최고경영자는 대우건설(047040)이 이달 초 체결한 15억달러 규모의 고속도로 사업 추진 무산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대우건설이 넉 달 안에 MOU 내용을 이행하지 못하면 이란 현지 건설사와 계약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란 수주를 독려했지만 실제 본계약에 이르기까지 걸림돌이 많다는 걸 방증하는 사례다. 앞서 이명박 정부 때도 자원외교 등으로 96건의 MOU를 맺었다고 홍보했지만 최종 계약으로 이어진 것은 16건에 불과했다.
 
이외에도 본 계약에서 설계변경이나 물가상승 등에 따른 추가비용을 시공사가 부담해야 하는 등 치열한 경쟁상황을 이용해 불리한 조건이 포함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란에서 수주보따리를 안고 돌아온 건설사들은 이란 특수에 부풀어 들뜨기 보다는 차분히 수주 준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국내 건설사들은 이미 저가수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수주 자체에만 열중해 제 살 깎아먹기식 수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종내에는 기업 전체가 흔들리는 불행을 겪었다. 업계에서도 이번 이란 수주전에서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이다. 수주액을 늘려 수주성과를 내세우기보다 실질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감을 택하겠다는 각오다.
 
업계 관계자는 "이란 시장이 분명히 호재인 점을 맞다"면서도 "본계약 체결까지 이르면 6개월 길면 1년가량 시간이 있는 만큼 수주액을 늘리는 데만 집중하지 않고 실익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집중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대형사들 대부분 저가수주로 홍역을 치른 만큼 허울뿐인 수주전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본 계약에 앞서 이란 시장 상황과 현지 문화를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란에서 해외기업이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EPC(종합설계시공)금액 계약고 기준 현지 업체의 지분이 최소 30% 이상 돼야 벤더 리스트에 참여할 수 있다. 공사를 맡는 대형사뿐만 아니라 국내 중소업체와 건설 기자재 업체들이 모두 이란 특수를 누리기 위해서는 벤더 리스트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란 정부의 재정 부족이나 현지상황으로 인해 계약 금액의 일부를 지하자원 같은 현물로 지급하는 등 지불조건이 기존 방식과는 다를 수 있는 점 등도 고려해야 한다.
 
안정적인 자금 확보도 필수적이다. 국제 유가 하락과 장기적인 경제제재로 이란 정부의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사비의 상당 부분을 우리나라 국책은행이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자금지원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수주자체가 틀어질 수 있다.
 
이번에 MOU를 체결한 물량 절반에 해당되는 250억달러는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프로젝트 파이낸스 형태로 부담하게 된다. 이는 지난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란을 방문했을 때 중국 측이 약속한 프로젝트 파이낸스 금액 200억달러를 웃도는 규모다.
 
대형사 관계자는 "이번 이란 수주 규모가 거대하기 때문에 국책은행 몇 곳만으로는 건설사가 원하는 만큼의 자금조달이 어렵다"며 "요즘 건설업계에서 건설사만을 위한 금융기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책은행 외에도 자금이 풍부한 중국이나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를 이용하는 등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자금대출에 대한 이자 등 금융비용이 해외로 유출되는 등 국가적으로 손실이 크다"며 궁극적으로 국책은행 외에 시중은행들의 참여율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 특수를 맞아 업계 일각에서는 저가수주 등 이란 시장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2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이란 건설시장 진출지원 간담회’의 모습. 이 자리에는 국토부 관계자를 비롯해 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현대·대우·SK·GS·쌍용 등 건설사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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