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폭스바겐그룹의 디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파문은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효율 좋은 디젤 세단의 입지가 흔들리면서 시장을 주도할 새로운 대항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근 대세로 부상한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의 친환경차가 더 주목받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전기차 기술이 내연기관 차량 만큼 안정화 단계에 있지 않아 전체적 흐름을 주도하긴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다. 미미한 시장 점유율은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완성차업체들은 국내시장에 고성능 모델에 준하는 출력과 효율성까지 두루 갖춘 가솔린 터보 모델들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중형 세단인 현대차(005380) 쏘나타와 기아차(000270) K5, 한국지엠 쉐보레 말리부, 르노삼성 SM6를 비롯해 최근 출시된 아반떼 스포츠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SM6는 디젤 모델 없이도 출시 첫달 국내 중형 세단시장에서 절대적 입지를 구축해온 현대차 쏘나타의 월간 판매량을 넘어설 만큼 호응을 얻었다.
여기에 한국지엠 역시 완전변경을 거친 신형 말리부를 통해 가솔린 터보 라인업 대열에 합류했다. 과감하게 1.5와 2.0 두가지 가솔린 터보모델만을 기본 라인업으로 출시했다. 신형 말리부는 지난달 27일 출시 이후 사흘 만에 6000대 사전계약을 달성하며 순조롭게 출발, 영업일수 8일만에 1만대를 돌파했다. 1분기 최대 흥행작으로 꼽히는 SM6가 1만7000대 계약건수를 기록하는 데 걸린 시간이 20일인 점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이다.
신형 말리부의 외관은 완전변경 모델답게 대폭 변경됐다. GM의 차세대 중형 세단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동급 최대 수준인 4925mm의 전장을 구현한 신형 말리부는 날렵하게 뻗은 헤드램프와 듀얼 포트 그릴을 통해 쉐보레가 선보이고자 하는 새로운 시그니처 디자인을 잘 표현했다.
또 쿠페 스타일로 떨어지는 루프라인은 높은 출력의 터보 모델과 적절한 궁합을 이뤘다. 이처럼 날렵하고 역동성을 강조한 디자인 적용을 통해 기존 세대 대비 길어진 전장에도 불구, 오히려 차체가 작아진 듯한 느낌을 준다.
신형 말리부는 기존 세대 대비 한층 날렵해진 외관을 갖췄다. 사진/정기종 기자
내부도 큰 폭의 변화를 거쳤다. 스티어링 휠부터 계기판, 기능 스위치 버튼까지 대대적인 변화를 거쳤다. 색감이 더해진 운전석 계기판과 정돈된 느낌의 버튼 배치는 쉐보레 차량 인테리어에서 느껴지던 투박함을 한층 개선하는데 성공했다. 중형 세단에 고급감을 준대형 모델과의 경쟁까지 노리는 최근의 완성차 트렌드를 놓치지 않겠다는 한국지엠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실내공간 역시 늘어난 전장을 기반으로 휠베이스 93mm, 2열 시트 레그룸을 33mm 확장하면서 중형세단에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넉넉한 실내공간을 구현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기존 세대와 어느 하나 같은 곳이 없을 정도로 내외관의 큰 변화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신형 말리부의 내부 공간은 하향 조정된 센터페시아 상단 라인과 조화를 이뤄 탁월한 전방 개방감을 제공한다. 사진/한국지엠
특히 늘어난 전장에도 이전 세대 보다 130kg 경량화에 성공했다. 초고장력 강판 사용 비중 증가와 경량화에 최적화된 차체 설계 기술을 통해서다. 여기에 4기통 1.5리터, 2.0리터 가솔린 엔진이 더해져 출력만큼은 국산 중형 세단 가운데 확실한 비교 우위에 있다. 시승에 사용된 차량은 2.0 터보 LTZ 모델로 동급 국산 최대 수준인 253마력의 최대 출력과 36.0kg·m의 최대 토크를 구현했다.
신형 말리부를 타고 서울 광진구 W호텔을 출발해 경기도 양평 중미산 천문대로 향하는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주행해봤다. 한적한 낮 시간이라 안전에 주의하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저속에서 고속으로 올라가는 구간에서 막힘없이 속도를 끌어올린다. 정지 상태에서 급가속을 해도 약간의 터보렉이 느껴질 뿐 빠르게 치고 나가는 데 거침이 없다.
가솔린 터보 모델을 기본 라인업으로 내세운 신형 말리부는 국산 동급 최대 수준의 출력과 대폭 개선된 변속감을 갖췄다. 사진/한국지엠
주행능력에 무게감을 주느라 연비를 포기한 것도 아니다. 1.5 터보 모델의 경우 동급인 SM6 1.6 터보 모델의 복합연비 12.3~12.8km/ℓ보다 조금 높은 13.0km/ℓ 수준이고, 2.0 터보 모델 역시 쏘나타 2.0 터보 모델과 동일한 10.8km/ℓ를 구현했다. 리터당 10km 중반대를 주행하던 디젤 세단만큼의 효율성은 아니지만 디젤 차량 특유의 소음에 방해받지 않는데다 준수한 출력을 제공하는 가솔린 터보 모델의 매력과 바꾸기엔 충분한 요소다.
이날 주행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변속감이었다. 다소 늦은 변속감은 기존 말리부에 대한 박한 평가에 항상 따라붙던 꼬리표였다. 운전자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던 쉐보레도 볼륨 차종인 말리부에 변속감을 대폭 향상시킨 3세대 6단 자동 변속기를 탑재했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차급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시승한 기자들간 삼삼오오 품평한 결과 변속감에 대한 변화가 가장 높은 평점을 줄만한 요소로 거론됐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신형 말리부 변속기의 변화는 그동안 불만을 가졌던 운전자들이 분명히 환영할만한 점이다.
이밖에 보쉬의 프리미엄 랙타입 파워스티어링 시스템, 듀라라이프 브레이크 로터 등 동급 최고 수준의 조향·제동 시스템을 탑재해 주행 성능에 무게감을 실었다.
가솔린 터보 모델 답게 주행성능에 무게감을 줬지만 지나치게 쏠린 느낌은 아니다. 초고장력 강판 확대 적용과 전 트림에 기본 적용되는 8개 에어백은 물론 ▲차선 유지 보조시스템 ▲긴급제동 시스템 ▲전방 보행자 감지 및 제동 시스템 ▲지능형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사각지대 경고시스템 ▲전방충돌 경고시스템 등 안전사양 역시 경쟁 차종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가족단위 고객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중형 세단이 갖춰야할 기본 덕목은 충분히 지킨 셈이다. 여기에 동급 경쟁 모델들에는 추가 옵션으로 적용되는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EPB), 스마트키 버튼시동을 기본 사양으로 채택해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순조로운출발을 알린 신형 말리부는 현대차 쏘나타, 르노삼성 SM6와 함께 국산 중형 세단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있다. 사진/한국지엠
신형 말리부의 출발은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한 기존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다. 디자인에서부터 소비자의 반응은 뜨겁다. 또한 연비와 가격경쟁력 또한 국산 중형세단 경쟁자와 비교해 주목받고 있다. 한국지엠이 야심차게 출시한 신형 말리부를 통해 SM6로 완성차 3위 탈환을 노리는 르노삼성과 부동의 1위 현대차 쏘나타를 제치고 1위 자리를 차지할지 경쟁이 흥미진진해 지고 있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