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2주 전만 해도 프로 무대 우승 하나 없는 '미생'에 불과했던 왕정훈이 한국 남자골프 사상 처음으로 유럽프로골프(EPGA) 투어 2연승을 이루며 '완생'으로 거듭났다. 끈질긴 근성과 고도의 집중력이 빛났다.
왕정훈은 15일(한국시간) 모리셔스 부샴의 포시즌스 골프장(파72·7401야드)에서 열린 EPGA 투어 아프라시아 뱅크 모리셔스오픈(총상금 100만유로·약 13억3000만원) 4라운드에서 버디와 보기를 각각 세 개씩 올리며 이븐파 72타를 기록했다. 최종합계 6언더파 282타를 친 왕정훈은 시디커 라만(방글라데시)을 한 타 차로 제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상금 16만6660유로(약 2억2000만원)도 받았다.
라만에게 한 타 뒤진 단독 2위로 4라운드를 맞은 왕정훈은 1번 홀(파)과 6번 홀(파4)에서 연속 보기로 주춤했다. 이때 라만과 네 타 차로 벌어졌다. 9번 홀(파4)과 13번 홀(파5)에서 연속 버디를 낚으며 분위기를 바꿨으나 14번 홀(파4) 보기로 다시 삐걱거렸다. 왕정훈은 15번 홀(파4)까지 여전히 라만에게 세 타 뒤졌다.
하지만 막판 반전 드라마가 쓰였다. 유럽 무대 첫 승을 노리던 라만이 16번 홀(파4)과 17번 홀(파3)에서 각각 더블보기와 보기로 자멸했다. 왕정훈은 자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7번 홀 파 플레이로 공동 1위가 된 왕정훈은 마지막 18번 홀(파5) 두 번째 샷이 벙커에 빠졌으나 침착하게 벙커샷을 그린 위에 올리며 버디 기회를 잡았다. 이후 라만은 버디 퍼트에 실패했고 왕정훈은 버디를 기록하며 환호했다.
왕정훈은 하산 2세 트로피에서도 드라마를 썼다. 출전 자체가 극적이었다. 대기 3번이었던 왕정훈은 다른 선수의 불참으로 대회에 나섰다. 어렵게 참가한 만큼 고비 때마다 침착했다. 한 타 뒤진 채 맞은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꼭 성공해야 했던 버디 퍼트를 넣으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티샷이 흔들리며 공이 러프에 빠졌지만 10m 장거리 버디 퍼트를 넣으며 다시 동률을 이뤘다. 이후 연장 두 번째 홀 버디를 낚으며 정상의 기쁨을 맛봤다.
특히 EPGA 2연승은 지금까지 한국 남자골퍼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왕정훈은 유럽 투어 사상 최연소 2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또 양용은(3승)에 이어 EPGA 2승 이상을 거둔 두 번째 한국 선수가 됐다.
왕정훈이 '미완의 대기'에서 '역전의 명수'로 자리매김한 것은 불과 2주만이다. 지난해 왕정훈은 아프라시아 뱅크 모리셔스오픈 공동 67위에 그쳤다. 1라운드 공동 선두에 오른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하지만 두 번 실패는 없었다. 1년 만에 66계단을 뛰어오르는 저력을 뽐내며 마침내 우뚝 섰다.
2연승 확정 후 왕정훈은 "운이 많이 따랐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왕정훈이 15일 열린 유럽프로골프 투어 모리셔스오픈에서 우승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24일 SK텔레콤오픈 4라운드 7번 홀 장면.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