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금융공기업들이 금융당국의 압박에 못 이겨 '우선 하고 보자'식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음달 대통령의 성과주의 점검회의를 앞둔 가운데 노조 동의 없이도 일단 통과시켜 놓고 보자는 것이다.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캠코), 산업은행 등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공공기관 9곳 가운데 3곳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했으나 이들 노조들이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있어 향후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전날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이사회를 열어 정부의 권고안대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산은은 금융위의 안대로 기본연봉 인상률의 차등폭을 현재 1, 2급에서 3, 4급까지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차등폭은 평균 3%포인트다. 또 성과연봉이 총연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이상(4급은 20% 이상)으로 하고, 성과연봉의 최고·최저 등급 간 차등폭도 2배 이상 두기로 결정했다. 전체 연봉의 차등폭은 금융위 권고대로 공기업 수준인 30%로 정했다.
앞서 산은 노조가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실시한 성과연봉제 확대 찬반 투표 결과, 94.9%가 반대해 노사 협상을 통한 성과연봉제 도입은 결렬된 바 있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주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별 동의서를 받는 등 성과연봉제 도입을 준비해 왔다. 노조를 통하지 않고 직원 개별 접촉에 나선 것이다. 산은 관계자는 "(개별 동의서를 통해) 상당수 직원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찬성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산은 노조는 "이동걸 회장은 취업규칙 불이익 개정엔 노사 합의가 필수임에도 지난주 직원을 압박하고 강요해서 받은 동의서를 근거로 불법 이사회를 강행했다"며 이사회 개시의 불법성을 이유로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앞서 캠코도 노조의 동의없이 이사회를 열어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취업규칙 변경을 의결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캠코 이사회는 전체 직원의 70%로부터 동의서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노조 측은 다수 직원이 반대하는데도 사용자 측이 강행했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지난 3일 전체 조합원 981명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80.4%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했다.
노조는 사측이 1대 1 면담을 통해 이를 강요했다며 홍영만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등으로 부산지방노동청에 고발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금융노조 등에서는 사용자 측이 근거로 삼은 직원 동의서가 올바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밀려 '우선 하고 보자'식으로 노조의 동의를 무시하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의했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방식은 노조와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 산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직원들의 급여와, 성과평가 방식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단 상반기 중으로 도입 의결을 해놓고 시간을 벌어놓자는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6월 공공기관장 워크숍을 주재하고 성과연봉제 추진 현황을 직접 점검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에서도 이달 말까지는 최대한 성과연봉제 도입 실적을 거둘 것을 금융공기관들에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성과연봉제에 대한 설명회를 직원들 상대로 개최하고 있지만 현재 노조 반대로 성과주의 도입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에서는 이달까지 답을 내놓으라고 하고 내부에서는 반발이 심하니 난감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7일 성과연봉제 도입을 확정한 예금보험공사도 노조원 찬반 투표를 벌인 결과 62.7%가 반대해 부결됐지만 이틀 만인 29일 노조위원장이 이를 뒤집고 사측과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주택금융공사의 경우 찬반 투표 결과 85.1%의 반대로 성과제도 개편안이 부결되자 김재천 사장이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금융노조는 16일 서울 중구 금융위 건물 앞에서 ‘불법·인권유린 규탄 및 금융위원장 사퇴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사진/금융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