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금융공기업들이 잇따라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이덕훈 수출입은행장과 권선주 기업은행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노조와의 타협이 요원해 보이는 가운데 물리적인 시간도 한 달이 남지 않아 사측이 일방적으로 이사회 의결을 거쳐 성과연봉제를 강행하는 것 외에는 묘수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예금보험공사가 최초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데 이어 이달 들어 자산관리공사(캠코)와 산업은행도 성과주의를 도입했다. 이제 남은 금융공기업은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주택금융공사 등 5곳이다.
산은의 경우 사측이 직원 동의서를 받은 결과를 토대로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현재 연봉체계를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개편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본 연봉 인상률을 차등하고 있는 직급이 1·2급에서 3·4급까지 확대된다.
산은이 노조의 동의가 빠진 상태로 논란 속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했지만 결국 나머지 국책은행들도 성과연봉제 도입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당장 이달 중으로 일부라도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기업은행(024110)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경우 이는 민간은행으로도 확산될 수 있어 금융당국의 기대감은 다른 금융 공기관보다 높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기업은행도 민간 은행과 업무가 가장 유사한 만큼 민간금융회사가 참고할 수 있는 모범사례가 돼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강화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 13일 사내 인트라넷에 컨설팅 업체에 의뢰한 성과주의 설계방안 초안을 공개했지만 노조 반발은 그대로다. 기업은행은 사내게시판을 통해 3급 이상 간부직과 4급 비간부직을 대상으로 개인평가를 실시하는 '성과주의 도입 기준'을 공개한 바 있다.
최종안을 마련하기 위해 아직 조율을 시작한 못한 데다 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 자체를 강력 반대하고 있다. 사측이 산은처럼 이사회를 강행할 경우 노조를 중심으로 행장 사퇴 촉구 시위로 까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노조 관계자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 위한 사측의 개인평가제도 설계안이 저번주에야 나온 것"이라며 "산은처럼 사측이 강제적으로 직원의 동의서를 받는 것만큼은 막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핀테크 선도 은행이라는 대통령의 칭찬을 받았다가 성과주의를 도입하지 못해 눈 밖에 나버렸다는 루머까지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도 성과주의 도입을 두고 진통이 예상된다.
수은은 자본확충에 앞서 국민이 공감할 만한 성과연봉제 도입과, 감사원 감사에 따른 후속책 마련 등 여러가지 실타래가 복잡하게 엉켜있다.
임 위원장은 국책은행 자본확충 '실탄' 마련을 두고 산은과 수은을 질타하면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압박했다. 수은은 노조 합의를 거쳐 성과체계를 개편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협상은 교착상태다. 이대로라면 연내 도입이 힘들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수은은 자본확충의 필요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노조에서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하지 못 한채로 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본연봉 인상률의 차등폭을 4급까지 확대시키는 산은의 안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직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개정 등에 노사 합의가 필요하지만 고용노동부 등 정부에서는 '누구든 성실히 일하면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며 성과연봉제가 직원에게 불리하지 않은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규정했다"며 "수은이나 기은도 마찰이 불가피하겠지만 (성과주의 도입을 위한 이사회를 강행한) 산은의 수순을 밟을 것"고 말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지난 10일 9개 금융공공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성과연봉제 확산 등 성과주의 도입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