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환자의 복지·권리증진에 앞장섭니다"

(인터뷰)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아내의 백혈병 투병이 환자운동 투신 계기"
"환자들의 목소리 내기 10여년…환자안전법까지 제정"

입력 : 2016-05-2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최원석기자]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은 지난 19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1991년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가 도입됐지만 시행이 유보돼 왔다. 법 통과에 꼬박 2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환자안전법'은 오는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1987년 공포된 이래 '환자'라는 용어가 들어간 우리나라 최초의 법이다. 환자를 위한 제도적 안전망들이 구축되기까지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47)의 노력이 컸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의 복지·권리 증진 운동을 전개하는 비영리민간단체다. 안기종 대표는 스스로 '아젠다 세일즈맨'이라고 소개한다. 의료현장을 찾아다니며 발굴한 아젠다를 기자에게 주면 '기사'가 되고, 공무원에게 주면 '정책'이 되고, 보좌관에게 주면 '법률'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새로운 아젠다를 찾기 위해 의료현장을 열심히 뛰고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변호사를 꿈꾸는 법학도였다. 한양대학교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생이던 그가 환자 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갑작스런 아내의 병환 때문이었다. 
 
(사진제공=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아내가 출산을 하고나서 10개월 뒤에 배속에 주먹만한 크기에 덩어리가 잡히더라고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아내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밖에 못 산다고 하더군요. 그때가 2001년, 동갑내기인 저와 아내 나이가 32살이었죠. 아내가 '글리벡'이라는 약을 손에 쥐고 간절히 기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노바티스의 글리벡은 워낙 효과가 뛰어나 항암제 패러다임을 바꾼 치료제로 꼽힌다. 기적의 백혈병 치료약으로 불릴 정도다. 국내에선 2011년 5월 출시됐다. 안기종 대표의 아내는 글리벡을 복용하면서 불과 두달만에 혈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10개월 뒤에는 골수이식을 받았다. 증세 호전으로 2006년에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 약을 줄이기 시작해 2014년 글리벡 투약을 끊었다. 2001년 당시 글리벡은 한알에 2만5000원 정도 가격을 형성했다. 환자는 하루에 4~8알 정도로 복용해 한달 약값이 300만~600만원 정도 들었다. 
 
"상당수의 환자들은 고가의 약값 때문에 해외에서 약을 구입해오거나 약을 복용하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환우회를 만들어 약가인하와 보험적용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제 아내는 중증환자여서 노바티스의 환자 지원프로그램에 포함됐습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무상으로 약을 제공받을 수 있었죠.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더군요. 환우회에 찾아가 봉사활동도 하고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생존에 몰린 백혈병 환자들의 투쟁은 2003년에 종결됐다. 2년의 투쟁으로 글리벡은 1정당 약값은 2만1000원 정도로 떨어졌다. 건강보험에 적용돼 약값 부담도 줄었다. 글리벡 투쟁이 가져온 결과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글리벡이 계기로 중증질환 보장 확대 정책이 실시됐다. 백혈병을 포함한 모든 중증질환의 본인부담금이 30%에서 20%로 줄었다. 2005년에 20%에서 10%로, 2009년에는 다시 5%로 하락했다. 
 
"글리벡 이슈를 해결하면서 배운 게 많아요. 환자단체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환자단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엄청 크더라고요. 약가를 결정하고 제도를 만드는 데 환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정작 환자는 배제되고 의료계, 제약계, 정부가 모여 환자에 대한 정책과 법률을 만들더군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한국백혈병환우회가 만들어진 계기입니다."
 
안 대표는 한국백혈병환우회에 2005년부터 간사로 활동을 시작해 2006년에 대표 자리에 올랐다. 정부와 제약업계를 상대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백혈병에 대한 제도적 사각지대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당시에는 골수이식을 받으려는 백혈병 환자가 직접 혈소판 헌혈자 20명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병원이 폐기부담으로 헌혈자 모집을 환자에게 전가한 것이다. 건강한 혈소판 헌혈자 20명을 구하려면 혈액형 등을 고려해 240명을 찾아봐야 해 환자들의 고충이 컸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국가인권위원회 농성을 통해 병원이 제공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여의도성모병원 백혈병 임의비급여 사건도 밝혀냈다. 병원이 환자에게 부과해서는 안 될 진료비 2000만~4000만원을 임의로 징수한 사건이다. 백혈병 환자는 완치돼도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불합리한 규정도 뜯어고쳤다. 
 
2010년은 안 대표에겐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한국백혈병환우회의 활동으로 다른 질환 환자의 건강권에도 관심이 커졌다.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암시민연대 등 7개가 모여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출범했다. 안기종 대표가 한국백혈병환우회 수장에 올랐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 중심의 의료환경을 만들자는 슬로건으로 출범했습니다. 질병, 이념, 국경을 넘어 환자 복지와 권리증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환자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의료문화 정착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6년만에 회원 3만5000여명 규모로 커졌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정·감정위원회,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이사회 및 기준조정·인증심의위원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 보건의료 정책, 제도, 법률 개선 구조에 참여하고 있다. 국제적 연대도 확대됐다. 2014년 3월 전세계 65개국 200여 환자단체들로 구성된 국제환자단체연합(IAPO)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영국에서 개최한 2014년 정기총회 및 제6차 세계환자대회에도 참석했다. 
 
환자 운동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환자안전법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조정법 제정, 중증질환 환자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간병서비스 건강보험 보험화,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 도입, 호스피스·완화의료·연명의결정법 제정, 의약품 리베이트 감시운동 등 다양한 공익활동을 전개했다. 안 대표는 환자단체연합회의 가장 큰 성과로 환자안전법 제정을 꼽는다.  
 
"환자 안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17개 조항으로 구성된 제정법으로 오는 7월 시행됩니다. 환자 안전은 환자 스스로가 지킨다라는 게 주내용입니다. 환자안전법 제정은 환자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법 중에서 환자 문구가 들어간 최초의 제정법이거든요. 향후 환자권리법, 환자기본법도 만들어질 수 있는 기본 골격이 되는 법입니다. 환자 단체가 연합하니까 법까지 만들 수 있다고 자신감도 생겼죠."
 
마지막으로 그는 환자 권리 확대를 위해 연대를 확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환자 문화를 바꾸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방침이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약을 제대로 복용하자는 캠페인, 우루루 몰려가는 병문안 문화 개선 캠페인, 항생제 바로 쓰기 캠페인 등 문화 개선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 많이 발생하는 질환인 폐암, 위암, 대장암, 간암만 해도 동호회는 있지만 단체는 없는 상황입니다. 1400개 질환 카페가 있는데, 이중 100개 정도는 단체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고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지원해 나갈 예정입니다. 각 질환에 대한 이슈는 7개 개별 환우회에서 집중하고 환자단체연합회는 전체 환자를 위한 정책이나 법률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겠습니다."
 
◇안기종 대표가 환자샤우팅카페서 발언을 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개최하는 환자샤우팅카페는 환자가 억울한 사연을 토로하고 변호사, 의사로 꾸려진 멘토들이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제도 개선을 모색하는 행사다.(사진제공=한국환자단체연합회)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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