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가습기 살균제 참사, 국민연금은 누구의 편이었나

입력 : 2016-05-30 오전 6:00:00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안방의 세월호'로 비유한 건 매우 합당하다. 사람의 생명을 이윤의 발 아래 놓은 탐욕스러운 기업.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걸린 명백한 위험 요소를 오랜 시간 방치해 피해를 키운 정부. 그리고 검은 자본과 권력의 커넥션 속에서 영혼을 팔아 이익을 챙기면서 직간접적으로 일조한 개인들. 이 모두의 탐욕과 무책임이 만들어 낸 끔찍한 합작품이 바로 두 해 전의 세월호였고, 지금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바다는 물론 안방에서조차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지 못했다. 특히 환경부, 보건복지부,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등 정부의 총체적 무책임은 백번 질타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이 무책임의 연쇄고리에서 우리들이 좀처럼 주목하고 있지 못하는 또 하나의 기관이 있다. 바로 금융기관이다.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100억원을 대출했는데, 80억원은 일본에서 퇴물 취급 받던 세월호에 대한 선박검사와 감정평가도 하지 않은 채 집행됐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옥시의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그룹피엘씨(Reckitt Benckiser Group plc)에 해외 주식의 방식으로 투자하고 있다. 2014년 말 기준으로 공시된 '국민연금 해외주식 투자종목 내역자료'에 따르면 그 규모는 861억원이다. 0.13%에 해당하는 지분율이다.
 
2014년 말 국민연금기금의 해외 주식투자 규모는 56조6000억원으로 자산군 내 레킷벤키저에 대한 투자 비중은 0.15%이다. 단순히 지분율과 투자 비중만을 놓고 보면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투자 종목 중 평가액 10억원 이상인 기업 2659개 중 투자 규모 순으로 132위다. 투자 규모 1위가 마이크로소프트사로 4856억원(지분율 0.12%, 자산군내 비중 0.86%)인 점을 감안하면 861억원은 결코 적은 규모가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PB상품 판매로 다수의 사망자를 낸 홈플러스. 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영국 본사 테스코(Tesco plc)에도 국민연금은 337억원(지분율 0.13%, 자산군 내 비중 0.06%)을 투자하고 있다. 2015년 말 기준 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에 대한 투자 규모는 더욱 늘어났을 걸로 짐작된다. 해외 주식투자 규모가 2014년보다 13조3000억원이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국민연금은 비상장사인 애경산업의 지주회사인 AK홀딩스(주)의 지분 6.07%(2016년 1분기 기준), 역시 비상장사인 롯데마트의 모기업인 롯데쇼핑의 지분 5.30%(2014년 말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이마트의 지분도 8.05%(2015년 3분기 기준)를 소유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인 PHMG를 제조해 해외에 수출할 때만 흡입 위험성을 경고하고 정작 국내에는 이를 고지하지 않는 이중적 행위를 한 SK케미칼도 국민연금은 12.96%(2016년 1분기 기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책임이 없는가. 현재까지 266명의 사망자와 1582명의 생존 환자라는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기관투자자로서 아무런 책임이 없느냐는 말이다. 투자에도 '윤리'가 있다. '도미니 400 사회지수'로 유명한 에이미 도미니는 세상이 이토록 궁색해진 건 투자자들이 책임감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통렬히 지적한 바 있다. 투자분석과 투자의사 결정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요소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적극 반영하자는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책임투자원칙(PRI)은 이를 대변하는 큰 흐름 중 하나다. 국민연금도 2009년에 PRI에 서명했다. 하지만 세계 3위 연기금이라는 위상에 부합하는 책임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은 불매운동을 벌이고, 진실 규명과 문제 해결을 위해 영국의 옥시 본사와 테스코와 주한 영국대사관을 항의 방문하는 등 국제 이슈화를 위해 피를 토하고 있다. 노르웨이 연기금이 레킷벤키저 임원의 해임을 건의하고 검경에 고발해 달라는 요청을 노르웨이 대사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가해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그 기업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투자 전에는 몰랐다손 치더라도 무서운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 투자자로서 어떤 식으로든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필자의 과문(寡聞)을 전제로 국민연금이 그 어떤 책임 있는 활동을 취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없다. 방관과 무책임의 극치다.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 필요를 역설하는 질문에 해외 기업은 적은 지분율을 이유로, 국내 기업은 관치 논란 부담을 이유로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해외 주식투자 종목에 대한 기업관여(Engagement) 등 주주권 행사에도 관치라는 말이 적용될 수 있는가. 지분율이 적어 비용 대비 효과가 없다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백번 양보하더라도 레킷벤키저 경영진이 사태 해결에 진심으로 나서도록 레터(letter)라도 보내야 하지 않는가. 주주가치와 기업가치가 더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말이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157만명 국민의 피와 땀이 밴 보험료로 조성된 공적연기금이다. 이 기금이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기업의 양분이 되어 가입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 수익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국민연금은 지금이라도 가해기업에 대한 투자철회나 기업관여에 즉각 나서야 한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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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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