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원사격이 필요하다

입력 : 2016-06-01 오전 6:00:00
글로벌 경제는 부채에 뒤덮여 있고 실물경제의 원리금 상환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2014년 기준 전세계 명목 국내총생산(GDP)는 78조달러이며, 금융기관이 제공한 신용(부채)은 174조달러다. 신용을 명목 GDP로 나눈 신용비율은 135%로 사상 최대 수준으로 높아져 있다. 그 동안 신용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세계 경제의 흐름과 독립적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지난 1990년대 미국 주도의 신경제, 2000년대 들어 브릭스(BRICs) 주도의 호황 시기에도, 그리고 2008과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증가했다. 결국 세계 경제의 성장은 부채에 의존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그 만큼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다.
 
전세계 경제는 과잉부채 상황에 놓여져 있으며,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부채가 늘어난 만큼 유동성은 풍부하며 금리는 역사적으로 떨어져 있다. 유동성 함정은 금리가 너무 낮아 채권 및 유가증권보다 화폐가 선호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화폐가 선호되므로 화폐가격 상승, 즉 디플레이션과 불황이 발생한다. 본원통화를 증가시켜도 화폐 유통속도가 하락하며 통화량이 증가하지 않은 경제, 금융적 현상이 발생되는 것이다.
 
유동성 함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은 현재 전세계 어느 곳에나 발견된다. 독일, 일본 국채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로 하락해 있으며, 미국 국채금리 역시 제로수준에 근접해 있다. 미국, 유로, 일본의 광의통화(M2) 유통속도 역시 역사적으로 최저치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한국 역시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한국의 인플레이션은 1% 수준에 불과하고, 국고채 금리 역시 역사적인 저점구간에 놓여져 있다. 한국의 M2 유통속도는 0.65배로 역시 최저치 수준으로 하락해 있다. 실물경제 역시 구조적 불황 진입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유동성 함정에 놓인 경제에 대한 대처가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 역시 가계 및 기업부채의 급속한 상승으로 매크로 레버리지 비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2015년 한국의 가계부채는 1207조원, 기업부채는 1756조원, 정부부채는 560조원으로 증가했다.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77.4%, 기업부채 112.6%, 정부부채 35.9%로 이를 합산한 매크로 레버리지 비율은 226%로 상승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2015년 한국의 명목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35.9%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 역시 유동성 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해 효과적인 재정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부채 비율과 재정균형 수준, 그리고 얼마 전의 국가 신용 등급 상향을 본다면 우리 정부는 해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재원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면 결국은 정책의 실효성과 시간이 중요하다.
 
금융위기 이후 유럽의 실패사례를 지양하고, 미국과 중국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크 삼아야 한다. 즉 복지 수요는 필요한 만큼 확충돼야 하나 유럽과 같이 재정부담을 초래할 정도가 되어서는 부담요인이 될 수 있다. 단기적 부양효과에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비효율적 건설투자에 집중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 교육, 경제 체질개선 등 실질적인 부분에 상관효과가 큰 분야에 재정집행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2015~2019년 국가재정 운용계획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여전히 균형재정 및 재정 건전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2016~2019년 재정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3%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놓여져 있다는 판단이 들면, 좀 더 과감한 재정확대 편성이 요구된다. 현재 계획 상으로 높은 재정지출 확대가 편성된 분야는 보건·복지·고용, 문화·체육·관광 산업이다. 그러나 연구개발(R&D)·교육·산업·중소기업·에너지·효율적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좀 더 확장적인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 2016년 경기 부양을 위한 추경편성, 2017~2020년의 재정편성에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6월에 접어들며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 경기의 둔화, 유럽의 브렉시트, 그리고 신흥국의 위기 지속 등 글로벌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안으로도 조선, 해운업의 구조조정에 이은 철강, 건설산업의 추가적인 구조조정 이슈, 그리고 이를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문제 등 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 경제는 분명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가 현재의 위치를 인지하고 있고, 낮은 국가부채 비율과 우수한 대외 건전성 확보, 그리고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중앙 정부나 중앙 은행이 각각 재정확장 및 통화확장 정책 여력을 상당부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효과적인 재정확장과 유연한 통화정책이 융합된 ‘지원 사격’이 있다면 위기는 극복할 수 있다. 금융시장은 실물경제를 반영한다. 한국경제가 다시 역동성을 회복하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투자대상이 떠오를 것이다
 
김영준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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