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기자] 최근 잇따라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사고 현장에 시민들의 자발적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 전체는 하나의 추모공간으로 바뀌었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앞 스크린도어와 역사 한편에 마련된 추모공간 역시 추모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나붙었다.
과거에도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살인사건은 발생했다. 이번 구의역 사고처럼 스크린도어 정비 직원이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는 이전에 2차례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같이 시민들이 직접 사고 현장을 찾아가거나 주변에 추모공간이 조성된 경우는 드물었다.
황상민 심리학 박사(전 연세대 교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도 타인이 느낀 아픔이나 고통의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황 박사는 "과거에는 사람들이 당장 내가 당한 게 아니니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세월호 사고 이후 나도 언젠가 희생자가 될 수 있을 거란 피해의식이 생겨나고 자연스럽게 타인의 아픔을 내재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6일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 한편에 마련된 강남역 추모공간에서 만난 여성 대부분은 자신도 그 현장에 있었다면 피해자가 됐었을 거라고 말했다.
사건 당일 강남역 인근에 있었다는 대학생 최모(22·여)씨는 "그날 사고가 발생하고 친구들한테 계속 전화가 많이 왔다"며 "친구들 서로가 피해를 당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우는 친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인 프리랜서 기자 나카가와 카오루(28)씨도 "일본에도 최근 들어 사회적인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데 일본인들도 항상 내가 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구의역 사고현장에 붙은 포스트잇에 적힌 글귀 역시 '열심히 일한 19살 청년의 죽음...대한민국 청년으로서 분노합니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비정규직이라서' 등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피해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황 박사는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피해의식은 앞으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황 박사는 "앞으로 많은 시민이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자신과 동일시할 것"이라며 "지금 시민들의 마음이 향후 어떤 사회적·정치적 메시지와 연결이 된다면 좀 더 큰 폭발력을 지닌 상태로 표현될 것"이라며 진단했다.
아울러 황 박사는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어쩌면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대응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0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9-4번 승강장에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김 모(19)씨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