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최근 메이저 업체들의 가격 담합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국내 골판지 시장이 이번엔 원재료 공급 담합 의혹에 휩싸였다.
4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국내 골판지 시장은 소위 ‘빅5’로 불리는 5개 기업(아세아제지·신대양제지·태림포장·삼보판지·한국수출포장)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 ‘일괄기업’으로 불리는 이들 대형사는 법인 내에 골판지 원지를 생산하는 ‘제지사’와 원지로 골판지를 생산하는 ‘판지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어, 원지 가격과 공급을 컨트롤해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지사로부터 원지를 공급받아 골판지를 생산하고 있는 판지사 내부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6일 다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 유통되는 원지 수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한 중소 판지사 대표는 “지난 3월 이후 대형 제지사의 원지 공급이 줄어들더니 현재 과거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원지가 들어오지 않아 공장을 못 돌리고 있는 업체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제지사 관계자도 “거래처 판지사로부터 원지 공급을 늘려달라는 요청이 부쩍 늘어났다”면서 “요청이 너무 많아 물건이 부족할 지경”이라고 부연했다.
관계자들은 기존에 충분했던 원지 물량이 갑자기 부족해질 이유가 없다며 ‘빅5’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원지 가격 인상을 위해 물량을 줄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때 500원대 후반까지 올랐던 원지(DW) 1㎡ 기준 가격은 지난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 이후 점차 인하돼 현재 300원대 중반까지 내려갔다.
업계 일각에서는 빅5가 단순히 가격인상을 넘어 시장 재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주장도 흘러 나온다. 한 관계자는 “원지가 없어 골판지 생산을 하지 못하면 납품기한을 못 지켜 거래처를 잃게 된다”며 “결국 그 거래처는 일괄기업으로 넘어가고, 그런 과정 속에 시장도 재편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업계 우려에 ‘빅5’ 측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최근 공정위로부터 처벌받아 몸을 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물량 담합을 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빅5 회사의 한 관계자는 “시장에 원지 공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며 “요즘 같은 불경기에 물건이 없을 정도로 잘 팔리는 일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물량 조절은 있을 수 없다”면서 “다만 일부 대금결제를 제대로 안 하는 회사들의 물량을 줄이는 일은 있다”고 말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