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20대 총선 비례대표 1번에 여성 이공계 인사들을 배치한 것과 달리 정의당은 당원 투표를 통해 오랜 기간 노동운동과 당직자 생활을 한 이정미 의원을 선택했다.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은 한편 노동문제를 다루는 환경노동위원회에 배치된 그는 지난달 30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어깨가 너무 무겁다. 당선되고 나서 지금까지 ‘내가 국회의원이 되어 기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임기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해결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이 의원은 개통 직전 사고가 발생한 인천지하철 2호선의 문제를 조사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작업중지와 안전점검 후 운행방침을 이끌어낸 것을 성과로 꼽았다. 그는 “내게 주어진 국회의원 신분은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관철되어야 하는 정책이 있다면 새누리당 의원이라도 100번이고 찾아가 설득할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발의한 법안 중 ‘환경미화원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법률안’을 두고 마음의 빚을 갚은 기분이라고 말한 이 의원은 "약속을 안 지킨 사람은 머리를 들고, 약속을 지켜달라는 사람은 숙이는 부조리에 분노하며 낸 법안"이라고 소개했다.
-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치에 몸을 담아온 것으로 안다. 진보정치·정당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기존 정당으로는 대변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런 점에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생각하다가 2000년 민주노동당(민노당)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이듬해에 가입했다. 본격적인 정당 활동을 시작한 것은 권영길 대표 시절인 2003년이었다. 당시 위원장급 고위당직자 중에 여성이 너무 없었다. 소위 공직사회의 여성할당 문제는 조금씩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었던 반면 당직자의 여성할당은 민노당에서 최초로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인원을 채우기 위해 여성인력을 찾던 중 누가 나를 추천한 모양이다. 평소 여성문제에도 관심이 많았고, 여성할당제를 위해 민노당이 나를 부르는데 거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 20대 국회에서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다. 원내 현안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정의당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민주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민의가 정확하게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선거제도 변경이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 당이 정당지지도 기준 7%의 지지를 얻었다. 그럼 그만큼의 목소리가 국회 안에 반영되어야 하는데 단순다수 소선거구제가 주를 이루는 선거제도 때문에 6석 확보에 그쳤다. 매번 국회의원 선거마다 1000만표 이상이 사표가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 선거제도를 바꿔 민주주의 다양성을 지키고 민의를 올바르게 수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에 세곳의 원내 교섭단체가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정책적인 구별이 되는지 의문이다. 정의당처럼 정책방향이 분명한 곳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녹색당 등 다양한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도 의회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줘야 한다.
적든 많든 국회라는 링 위에 정의당이 하나의 선수로 들어와 있는데, 경기규칙이나 운영방식 등을 정할 때 몇몇 선수(교섭단체)끼리 논의하고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문제도 있다. 국회가 국민을 대변하는 곳이니만큼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는 룰이 형성되어야 한다. 의원들의 상임위 배치가 이뤄질 때도 우리 당은 협의는 커녕 사전통보도 받지 못했다. 이런 것을 개선하는 것이 정의당의 몫이다.
- 6석의 소수당 원내수석으로서 다른 당 수석을 만날 때 힘든 점이 있다면.
교섭단체 수석들이 모여 어떤 의제를 논의하는지 사전에 파악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모인 결과 통보받고 대처해야 하는 것이 답답하다. 이번에 국회에 총 8개의 특위가 구성되는 것으로 합의됐는데, 가습기살균제 문제 특위야 우리도 계속 말해왔지만 나머지 7개 특위 모두가 시급한 문제를 다루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 제일 답답하다. 지금은 따르거나 비판하는 수밖에 없는데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파트너십 형성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
- 언론문제 전문가인 추혜선 의원의 외교통일위원회 배정에 대해서 할 말이 있을 듯하다. ‘다른 당 의원들 중에서도 원치 않는 상임위에 간 사람이 있다’는 반론도 있다.
다른 당은 모든 상임위에 적어도 2~3명의 의원이 들어가 현안을 책임질 수 있다. 정의당은 전체 상임위에 모든 의원이 못들어간다. 그래서 6명이 가장 잘 일할 수 있는 상임위로 가겠다는 것인데, 추 의원을 자신의 전문성과 전혀 상관없는 외통위에 넣은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국토위나 교문위 등 정원이 30명이 넘는 상임위가 몇개 있다. 미방위나 환노위 등은 훨씬 적다. 정수조정을 통해 자리 하나만 늘리면 되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안 가겠다는 상임위에 가서, 그동안의 전문성을 살려 입법활동을 하겠다는 사람을 미방위에 배치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국민들이 볼 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 정치의 다양성 확립을 위해 타파되어야 할 관행이나 개선점이 있다면.
교섭단체 문제로 보인다. 교섭단체가 되는 문턱(20석)이 우리나라처럼 높은 곳이 세계적으로 몇군데 안된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은 의원 1명만 있으면 교섭단체가 되고 프랑스는 의석 수 2.6%가 기준이다.
-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일하게 됐다. 정의당이 관심을 두는 각종 현안과 밀접한 상임위라는 생각이 든다.
책임이 무겁다. 청년실업 문제나 '구의역 사고'로 대표되는 하청노동자 문제 등을 다루는 곳 아닌가. 의원실에 있으면 하루에도 몇 건씩 힘든 분들의 이야기가 들어온다. 큰 정당에 가도 해결이 안되니까 우리같은 조그만 정당에 와서 하소연하는 것 아니겠나. 그분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무엇 하나라도 변화되도록 제대로 바꾸는 것이다. 전체 300명 의원 중 정의당은 6명밖에 안되고 입법발의를 하려고 해도 다른 당 의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등 장벽이 있지만 하나라도 좋은 제도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급함이 있다.
- 최저임금 인상 문제가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차이로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을 찾아가 말한 적도 있지만, 경영계가 인상률 0%를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원장은 경영계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면 합리적인 교섭이 되겠냐’고 따끔한 지적을 해야 한다. 물가상승률 등을 따져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비가 있는데 경영계가 동결을 말하면 ‘당신들 지금 무성의하게 나오는 것 아니냐’며 혼도 내고 전향적인 안을 갖고 나오도록 하기 위해 위원회가 있는 것이다. 교착상태를 방치해두다가 마지막에 병아리 눈물만큼 올리는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국민들이 용납하기 어렵다.
- 가습기살균제 문제에서도 3·4등급 피해자 배상이나 기존 폐섬유화 외에 비강섬유화 피해자 확인 등의 현안이 산적해 있다.
정부는 3·4등급 피해자의 경우 동물실험상 폐손상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 지원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페스트 균의 경우 쥐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지만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않나. 동물실험 결과를 운운하지 말고 임상역학실험에 대해 존중하고 지원해야 한다. 자신들이 만든 행정적 틀 안에 이 문제를 가둬놓기에는 너무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시간이 흘러 피해자들의 병이 깊어지고 공소시효가 끝나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옥시나 SK케미칼 등 부도덕한 기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부 관리감독에도 책임이 있다. 피해자 지원대책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최대한 지원할 수 있을 것인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 삼성전자서비스 기사 사망, 유성기업 노조탄압 등의 노동현안 입장은.
법을 다 바꿔야 한다. 실질적으로 업무를 직접 지시한 사용자의 직접고용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위험한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를 직접고용 하는 것은 시민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런 법률을 만들라고 국회가 있는 것 아닌가. 일반 국민이나 시민사회, 노조나 억울하고 분노할 때 국회는 그 억울함과 분노를 제도로 해결해주는 곳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다른 당 의원들도 호통만 칠 것이 아니라 약자들 입장에서 협력하고 문제해결에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지금까지 발의했거나 발의할 법안 중 중점을 두는 것이 있다면.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는 ‘환경미화원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법률안’과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환경미화 노동자 법안은 하청·간접노동자에 대한 상징적인 법안이고 최저임금법은 소득불평등 완화를 위한 문제로 보면 된다.
환경미화원 법안을 낼 때는 내 마음속 약속을 지키는 심정이었다. 19대 국회 당시 국회 노동자들이 3년마다 하청재계약을 맺고 있었다. 2011년 박희태 국회의장 시절 무기계약 방식으로 직접고용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3년이 지나 노동자들이 그 약속을 지켜달라고 새누리당을 찾아가 머리도 숙였더니 모 의원이 “정규직되면 노동 3권이 생기고 파업이나 하는데 왜 전환시켜주느냐”는 황당한 발언을 하더라. 노동자들도 울고, 나도 열이 받은 상태로 브리핑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마음 속으로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이 문제만은 꼭 해결한다’고 다짐했다. 약속을 안지킨 사람이 머리를 숙여야지 왜 약속을 지켜달라는 사람이 머리를 숙이나. 이러한 부조리에 분노하며 20대 국회에 들어와서 법안을 발의하려던 찰나에 정세균 국회의장이 직접고용을 약속한 것이다. 이걸 국회뿐만 아니라 전체 환경미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정의당 이정미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최저임금 인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