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유도 안창림 "일본 귀화 거절 후회 안 해…한국 금메달 더 멋있다"

한국 온 지 2년 만에 세계 1위…리우 올림픽 우승 목표
"죽고 싶을 만큼 훈련하지만 몸 상태 최고…'금메달'이란 꿈은 지금 한계 넘을 힘"

입력 : 2016-07-10 오후 1:22:52
[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재일동포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련을 겪은 우리에게 곧 '아픔'이자 '상처'를 의미한다. 상당수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해 2세와 3세가 탄생했지만, 이들은 국내에선 '이방인', 일본에선 '자이니치(재일 조선인)'로 불린다.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제대로 머물 수 없는 경계인인 셈이다.

보수적인 문화가 남아 있는 스포츠계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스포츠가 반일 감정을 풀 유일한 매개체로 여겨졌던 터라 재일동포라는 존재가 맞지 않았다. 일본에서 살아남으려면 귀화가 반드시 필요했다. 2000년 들어 축구의 이충성(31·일본명 리 타다나리)과 유도의 추성훈(41·아키야마 요시히로)이 재일교포 4세란 타이틀을 안고 자기 뿌리인 국내에서 태극마크를 꿈꿨지만, 둘 다 적응하지 못하고 상처만 안은 채 일본 대표를 선택했다. 
 
슬픈 이야기로만 끝맺었던 재일교포 운동선수의 국내행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 2월 국내 유도계에 재일동포 3세 안창림(22·수원시청)이 등장하고부터다. 일본의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할아버지 나라'로 온 그는 늘 한국 국가 대표를 꿈꿨다. 국내에 온 지 한 달 만인 2014년 3월 대표 선발전 남자 73kg 이하급 3위를 한 안창림은 마침내 지난 2월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강력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국내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자신의 최종 목표인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를 지난 5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필승관 유도장에서 만났다.
 
안창림이 지난 5일 서울 노원구 화랑로의 태릉선수촌 필승관 유도장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광연 기자
 
 
안창림이 지난해 7월6일 광주 서구 염주빛고을체육관에서 열린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남자 유도 73kg 이하급 준결승에서 일본의 야마모토 유지를 꺾은 뒤 도복을 가다듬고 있다. 사진/뉴시스
 
운동선수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잘생긴 얼굴에 짧은 머리. 키는 170cm로 작지만 딱 부러진 어깨와 도복만 입어도 느껴지는 근육. 수없이 매트 바닥에 부딪힌 까닭에 형태를 잃고 울퉁불퉁 부풀어 오른 '만두귀'까지. '유도선수' 안창림의 첫인상이다. 다부진 체격을 가진 그는 말투에서 곧바로 일본어 억양이 느껴질 만큼 우리말 구사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정확한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다.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안창림의 목표는 오직 리우 올림픽 금메달이다.
 
"제가 국내에 온 이유는 오로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기 위해서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꼭 목에 걸고 싶다. 대부분 올림픽을 큰 무대라고 말하지만, 저는 다른 일반 국제대회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무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이 매일 열심히 운동한다. 이렇게 계속 열심히 훈련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본다."
 
안창림이 지난달 21일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고 있다. 사진/뉴스1
 
훈련 중간 이야기를 나누는 통에 처음에 그는 연신 비 오듯 떨어지는 땀을 닦기 바빴다. 어느 종목이든 태릉선수촌 훈련은 강도가 매우 세기로 유명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뤄지는 강훈련에 녹초가 되기 일쑤지만,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을 생각하면 이대로 쓰러질 수 없다. 인터뷰 도중에도 한계를 시험하는 선수들의 시원한 기합 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다. 안창림 역시 매우 힘들지만, 오히려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올림픽 준비하면서 이렇게까지 운동하는 게 가장 힘들다. 매일 훈련하면서 한계를 넘나들고 있다. 말 그대로 '죽고 싶을 만큼' 연습하고 있다. 하지만 제 목표인 '금메달'이란 꿈이 바로 한계를 넘을 힘이 된다. 또 코치님을 비롯한 많은 대표팀 동료가 도와주고 있다. 금메달 말고 다른 건 메달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안창림은 가라테 도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안태범(52) 씨 덕에 초등학교 1학년 때 자연스럽게 유도를 접했다. 재일교포란 이유로 차별도 당했지만, 유도로 꿈을 키웠다. 일본 유도 명문 쓰쿠바대 2학년이던 2013년엔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 정상을 차지하며 대학 강자로 떠올랐다. 소속팀 은사는 물론 대표팀 감독까지 나서 일본 귀화를 권유했다. 그간 아들이 한국 국적인 탓에 중요 대회에 뛰지 못한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 역시 귀화를 권했다. 하지만 안창림의 선택은 한국행이었다. 
 
"어릴 때부터 '한국 사람'으로 교육받았다. 원래부터 귀화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안 했다. 국내에 와서 금메달 따는 게 (일본에서보다) 더 멋있다고 생각했다. 한국 유도와 일본 유도의 차이점은 바로 체력과 정신력이다. 두 부분은 한국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일본 귀화 제의 거절을 후회한 적은 아예 없다. 제가 여기 와서 더 잘 된 것도 있고 안 왔으면 세계랭킹 1위까지 못 했을 거다."
 
안창림(왼쪽)이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남자 유도 73kg 이하급 준결승전에서 야마모토를 상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안창림이기에 이전에 한국에 왔던 재일동포 선배들이 넘지 못한 '보이지 않은 벽'을 허무는 일이 꼭 필요했다.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식 운동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했다. 매사 긍정적인 안창림은 이에 잘 적응했다. 특히 그가 별 탈 없이 기량을 쌓을 수 있었던 배경엔 적응에 여러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유도 동료들의 존재가 컸다. 순조롭게 한국에 안착한 안창림은 기술 위주의 일본 유도 바탕 위에 체력과 정신력을 앞세운 한국 유도를 결합하며 두 나라 유도 강점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한국과 일본 유도가 접목된 안창림의 유도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제가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이곳 규칙을 아예 몰랐다. 그러자 유도 동료들이 거기에 대해서 잘 알려줬다. 모두 저한테 친절하게 대해줘서 적응하기 괜찮았다. 한국식 위계질서에 관해서도 적응하기 힘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여기 와서 그런 걸 배워서 예의 바르게 됐다. 예절을 배워서 더 좋았던 거 같다. 유도 자체도 많이 배웠다. 우리 유도의 강점은 체력과 정신력이라고 생각한다. 기술 역시 코치님이 잘 알려주셔서 세계 정상급이다."
 
한국에 온 지 4개월 만인 2014년 6월 국가 대표 최종선발전 정상에 오른 안창림은 그해 11월 제주 그랑프리 국제유도대회 1위를 차지했고 12월 도쿄 그랜드슬램에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2월 뒤셀도르프 그랑프리 동메달을 획득한 뒤 파리와 아부다비 그랜드슬램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리우 금빛 전망을 밝혔다. 단 하나 모자란 게 있다면 세계랭킹 4위 오노 쇼헤이(24·일본)와 네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패했다는 점이다. 리우에서도 오노를 넘어야 우승이 보인다.
 
"오노를 한 번도 못 이겼다고 억울하거나 그런 건 하나도 없다. 그간 제가 판단 실수를 비롯해 경기를 잘 못 풀었다. 오노에 대한 연구를 안 했던 것도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다 잊었다. 제가 가진 능력을 한 단계 더 올리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한다. 지난 일본 전지훈련은 물론 최근에도 전략적인 부분에서 상대를 많이 연구하고 있다. 대비를 많이 했다. 좋은 성과가 나올 거 같다. 솔직히 말해 유도 인생에서 지금 몸 상태가 제일 좋다." 
 
안창림이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를 듣고 있다. 사진/뉴스1
 
안창림은 인터뷰 내내 여러 차례 '올림픽 금메달'을 언급했다. "올림픽 금메달은 반드시 따겠다",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다" 등 답변 대부분 마지막엔 '올림픽 금메달'이 흘러나왔다. 올림픽 금메달은 그가 한국행에 택한 궁극적인 이유란 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올림픽 금메달만을 꿈꾸는 안창림은 자기 장단점에 대해 말할 때도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제 장점을 설명하면 어느 자세에서도 업어치기 기술을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밖에 좌우는 물론 앞뒤 기술 모두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단점은 이제 없다고 생각한다. (웃음) 이유는 이제 맹훈련으로 보완해서 단점인 것도 좋아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과 2년 만에 올림픽 메달 기대주로 급부상했지만, 재일교포 3세 타이틀에 세계랭킹 1위까지 현재 안창림의 어깨에 짊어진 짐은 절대 가볍지 않다. 올림픽에서 금메달만이 인정받는 '한국식 마인드'를 생각하면 선수 스스로 과도한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안창림은 이를 즐긴다. 스스로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강조하며 배수진을 쳤다. 아직 22살 어린 나이지만, 그에게 '내일'은 기약 없는 미래일 뿐이다.
 
"원래 부담 같은 건 느끼는 성격이 아니다. 금메달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다. 그저 현 상황이 좋을 뿐이다. 올림픽이란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영광스럽다. 또 지금은 금메달을 따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이다. 제 인생에서도 좋은 경험이기 때문에 부담은 아예 없다.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하고 임하겠다. 이번이 저의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열린다. 긴 시간이고 제가 다음 올림픽에 나선다는 보장도 없다. 기회를 잡아야 할 때 잡아야 최고의 선수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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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