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와 성주는 멀다. 행정구역상으로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강원도 속초에는 바다가 있고 경상북도 성주에는 바다가 없다. 속초는 해산물이, 성주는 참외가 유명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땅에 있다는 사실 말고는 속초와 성주의 유사점을 찾기 어렵다. 그러던 2016년 여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거리도 멀고 공통점도 찾기 어려운 두 곳이 나란히 가장 ‘뜨거운 곳’으로 부상한 것이다.
속초에는 난데없는 ‘포켓몬 고(GO)’ 열풍이 불었다. 포켓몬 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치 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처럼 게임마니아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다. SNS에는 속초에서 포켓몬 고 게임을 즐기는 사진과 동영상이 넘쳐났다. 순례 행렬에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은 ‘좋아요’와 ‘공유하기’를 누르는 것으로 부러운 마음을 삭이는 중이다.
포켓몬 고는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를 주제로 한 스마트폰용 증강현실(AR) 게임이다. 앱을 내려 받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내가 있는 곳을 비추면 화면에 가상의 몬스터들이 출몰한다. 한국은 서비스 지역이 아니므로 공식적으로는 이 게임을 즐길 수 없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게임업체의 음모설까지 등장한다) 속초를 비롯한 강원도 북부 일부 지역이 서비스 가능지역으로 풀리면서 사람들이 몰리게 된 것이다.
뜬금없는 ‘포켓몬 고’ 열풍에 속초는 지금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관광객이 줄고 있는 마당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 자체가 그저 반가울 뿐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한국 포켓몬 고의 성지’, ‘태초 마을’이 된 속초 주민들이 나중에라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면 누구한테 해야 할까? 어쩌면 이 질문에 난데없이 불어 닥친 ‘속초 열풍’을 읽는 열쇠가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정부의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자체의 무슨 캠페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국내 업체의 마케팅도 아니다. 속초는 그냥 자고 일어나보니 가장 뜨거운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어떤 과학적 설명도 무의미하다. 포켓몬 고 게임처럼 가상세계에서나 가능했던 이야기가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을 2017년 여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정반대의 대척점에 성주가 있다. 인구 4만6000여 명의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지역이 난데없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는 폭격을 맞았다. 전자파 위험성, 검증되지 않는 전략적·전술적 가치, 불필요한 주변국과의 마찰 등 여러 논란 가운데 주민들이 직접적으로, 가장 크게 반발하는 대목은 전자파의 위험성이다.
사드는 탐지거리에 따라 크게 ‘종말 모드(Terminal Mode)’와 ‘전진배치 모드(Forward-based Mode)’로 나뉜다. 종말 모드는 탐지거리가 600~800km, 전진배치 모드는 최대 2000km에 달한다. 이러한 탐지 능력은 고성능의 레이더가 있어 가능하다. 레이더는 전자파를 발사하고 물체에 부딪혀 돌아오는 전자파를 통해 대상을 분석하는 원리다. 사드에 사용되는 레이더는 더 먼 곳의 물체를 더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8~12GHz의 고주파 전자파를 발산한다. 미군은 괌에 사드 기지를 배치할 때 “100m 이내에는 전자파로 인해 심각한 화상이나 내상을 입을 수 있다”며 사람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구역으로 설정했다.
성주 주민들이 반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 때문이다. 모든 논의는 일사천리,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얼마 전까지 어떤 진척도 없다던 정부는 미국과 사드 배치에 합의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결정된 후보지도 없다고 했지만 곧 성주가 최적지라는 발표가 나왔다. 전자파의 위험성은 “100m 밖은 안전하다”는 논리로 일축하고 있다. 전날까지 인근 칠곡 주민들의 반발을 지켜보던 성주 주민들은 다음날 자신들이 군청으로 몰려갔다. 성주 주민들로서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한국이라는 같은 땅에서도 이처럼 진풍경과 살풍경이 교차한다.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곳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지지만, 정부가 뭔가 하려는(그것도 적극적으로) 곳에서는 살풍경한 모습이 전개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속초 주민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 가상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일로 끝나길 바랄 것이다. 성주 주민들은 지금의 사태가 현실이 아니라 가상 세계의 일로 끝나길 소망할 것이다.
2016년 여름, 한국은 그렇게 가상과 현실 세계를 오간다. 게임에서 그것은 즐거움이지만, 삶에서는 고통이다.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가상의 세계를 찾는 법이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