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프로야구 내 승부조작 사실이 잇달아 드러나면서 더 많은 선수가 사건에 연관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뿌리를 뽑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불법 스포츠도박 그 자체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다음 달 12일까지 승부조작 자진 신고 기간을 둔 가운데 지난 23일 KIA 타이거즈의 좌완 투수 유창식(24)이 구단 관계자와 면담 과정에서 승부조작 사실을 시인했다. KIA가 이를 곧장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통보하면서 사건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창식은 한화 이글스 소속이던 2014년 4월1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선발 등판해 1회초 3번 타자 박선민에게 '고의 볼넷'을 내줬다. 당시 유창식은 1번 타자 정형식과 2번 타자 나바로를 삼진으로 잡은 뒤 갑작스레 제구가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볼넷을 허용했다. 심지어 안타까운 표정까지 지으면서 모두를 깜짝 속였다. 승부조작 사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첫 이닝 볼넷을 시도한 것으로 야구계는 보고 있다. 유창식은 승부조작 대가로 전직 야구선수 출신 브로커한테서 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해당 브로커를 중심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야구계 안팎에선 앞으로 더 많은 승부조작 사례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후배로 얽힌 국내 프로스포츠 환경과 수사망이 확대된 것에 따른 불안감이다. 2012년 박현준과 김성현을 시작으로 최근 이태양(NC), 문우람(넥센), 유창식까지 승부조작으로 처벌을 받거나 의혹을 받은 선수가 5명으로 늘어나면서 의혹의 눈초리는 더욱 커졌다.
한 은퇴 야구인은 "솔직히 예전엔 금전적인 여유가 있지 않았다. 승부조작을 해서 돈을 받는다는 것까지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도 많고 선수들도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지금까지 나온 승부조작 사례 면면을 보면 대다수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어린 선수들이다.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인 게 사실"이라며 "몇몇 또 다른 선수들이 얽혀 있다는 소문이 도는 등 흉흉하다. 이게 시작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KBO나 구단이 그 많은 선수를 다 관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수들의 도덕성은 기본이지만 그와 더불어 스포츠도박 사이트 문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없는지 그쪽도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앞으로도 같은 유형의 사건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 또한 "사건의 본질은 결국 불법 스포츠도박이 관여된 것이다. 이런 사이트에서 스포츠도박을 하는 사용자 역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 근절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있어야 한다"면서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 사이에서도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보면 자진 신고거나 하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캠페인을 펼치는 것도 여러 대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스포츠도박 규모는 21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불법 도박 전체 규모인 83조7000억원에서 4분의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승부조작 사실을 시인한 KIA 타이거즈의 좌완 투수 유창식.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