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신 스틸러'(Secne Stealer)를 직역하면 '장면을 훔치는 사람'이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강렬한 연기로 주인공 이상의 주목을 받는 조연에게 주로 쓰이는 수식어다. 수 년전만 해도 신 스틸러는 인지도가 높지 않으나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주로 차지했다. 배우 김대명과 배성우, 김성균 등이 신 스틸러로 주목을 받은 뒤 비중과 분량이 늘어난 케이스다.
최근 다수의 작품을 보면 이름값이 높은 배우들을 섭외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김수현, '베테랑'의 마동석 등 수 많은 스타 배우들이 단 몇 십초에 해당하는 장면에만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이러한 신 스틸러들은 후반부에 '화룡점정'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초반 갑작스레 나와 작품의 본론에 출발점이 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신 스틸러의 활용법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배우 심은경. 사진/뉴시스
25일까지 6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은 심은경을 신 스틸러로 활용했다. 심은경은 부산행 열차에 올라탄 첫 좀비 역할을 맡았다. 약 2분도 안되는 분량에 그의 얼굴이 잡힌 장면은 단 한 컷이다. 그럼에도 심은경은 특유의 개성있고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부산행' 초반부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워낙 짧은 분량 탓에 영화를 본 관객들마저 "심은경이 나왔어?"라고 질문하기도 하지만, 이점이 오히려 더 화제를 모으는 역할을 했다. 연상호 감독은 "작품의 초반부의 중요성 때문에 능력있는 연기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심은경의 얼굴이 돋보이면 몰입을 방해할 수 있어 최소한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앞서 영화 '아가씨'에서는 문소리가 단 네 신에 해당하는 분량에 나와 극찬을 받았다. 어린 히데코의 이모로 나온 문소리는 남편인 코우즈키(조진웅 분)로부터 온갖 멸시를 받는 모습으로 인상을 남겼다. 박찬욱 감독은 "코우즈키로부터 얼굴의 문지름을 당하고 안 부끄러운 척 상황을 넘기려는 문소리의 눈빛은 경이로울 정도"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신 스틸러가 활약하는 영화는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8월 3일 개봉하는 '덕혜옹주'에는 박주미와 백윤식이 등장하며, '국가대표2'에는 조진웅이 배성재 SBS 아나운서와 함께 해설자로 나온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신 스틸러를 활용 중이다. 최근 종영한 tvN '디어 마이 프렌드'는 노희경 작가와 인연이 깊은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조인성과 이광수 외에도 성동일과 장현성, 다니엘 헤니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디어 마이 프렌드'에서 화제를 모으는 것을 넘어 사랑과 모성애 등의 감성을 이끄는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했다. 서강준은 SBS '딴따라'에서 2회에 걸쳐 등장해 카일(공명 분)이 한국으로 올 수밖에 없는 사연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근 첫 방송한 MBC 'W-두개의 세계'에서는 허정도가 신 스틸러로 맹활약했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독특한 과외선생님을 연기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 일명 '미친개 교수'로 나와 한효주와 뛰어난 케미를 선보였다.
드라마 역시 신 스틸러 활용은 계속될 전망이다. 11월 방영 예정인 tvN '안투라지 코리아'는 배우 진구를 비롯해 박찬욱 감독 등 다양한 인물들이 신 스틸러 출연을 알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방송 관계자는 "이름값 높은 배우들의 출연은 작품으로 봤을 때 화제성에 큰 힘이 되며, 배우들의 경우에는 짧은 스케줄로 관객과 시청자들에 얼굴을 비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 더 자주 활용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