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희석기자] 정치는 때때로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친다. 미국과 같은 경제대국의 대통령 선거가 대표적인 사례다.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어떤 정책을 펼치는가에 따라 세계 경제의 흐름이 바뀌기 때문이다.
11월8일 예정인 미국의 올해 대통령 선거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시장도 관련 보도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후보별 공약에는 향후 경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힌트가 숨어있다.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매우 작다. 아직 누가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지만 시장은 공격적인 공약을 내걸은 트럼프 후보에 좀 더 주목한다.
국제 금 시장에서는 트럼프 후보를 둘러싸고 다양한 전망도 나왔다. 트럼프가 미국 경제를 망쳐 안전한 금으로 투자자들이 몰릴 것이란 전망과 달러화 가치 급등으로 인한 금 가격 폭락을 예상하는 목소리까지 많은 의견이 혼재돼 있다. 금 투자자라면 정치적 중립과 신중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사진/뉴시스·AP
트럼프가 당선되면 금값 치솟을까
네덜란드의 ABN암로은행은 지난 22일 트럼프가 당선되면 국제 금값이 온스당 1850달러까지 치솟는다는 전망을 내놨다. 26일 기준 국제 금 시세는 온스당 1328달러 정도였다.
ABN암로은행이 트럼프 당선 시 금값 폭등을 예상하는 배경에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 미국 경제를 약화시킨다는 부정적 전망이 자리한다. 경기가 침체되면 안전 자산인 금에 돈이 몰린다는 논리다.
금값은 미국의 통화인 달러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금값이 내리고, 달러화가 약해지면 금값은 상승한다. 국제 금값이 달러화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면 유로화나 엔화 등 다른 통화 사용자들에게는 금 투자에 대한 가격 부담이 커진다. 자연스레 금 수요가 줄면서 가격은 하락한다.
ABN암로은행은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때 금값의 움직임을 과거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빗대어 소개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1기 재임 기간에는 달러화 가치가 68% 오르면서 금값이 47.6% 하락했다. 2기에는 반대로 달러화 가치가 39% 하락했으며 금값은 32.8% 올랐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도 달러화 가치와 금값은 반대로 움직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 기간도 마찬가지다.
ABN암로은행은 트럼프보다 클린턴 후보의 대통령 가능성을 크게 평가했다.
트럼프 공약은 달러화 초강세 유도
트럼프 재임 기간 달러화 가치 급상승과 금값 폭락을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ABN암로은행과는 정반대의 시나리오다.
미국 기업들은 해외에서 보유하는 수조달러의 자금을 미국으로 옮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재는 세금이 너무 많아 제약이 있다. 트럼프는 기업들이 해외 자금을 본토로 쉽게 들여올 수 있도록 세제를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기업들의 자금을 들여와 경제를 살리겠다는 계산이다. 막대한 양의 달러가 본토로 이동하면 달러화 강세는 불 보듯 뻔하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금값은 하락한다.
미국은 무역 불균형이 매우 심한 나라다. 매년 막대한 무역 적자를 기록한다. 이는 달러화 해외 유출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며 달러화 가치를 내리는 요인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심각한 무역 불균형을 바로 잡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무역적자 규모가 줄면 달러화 가치는 오르게 된다.
트럼프는 제조업을 다시 살리고 불법 이민도 막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의 말대로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면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은 달러화 가치 상승, 금값 하락으로 이어진다.
투자는 정치적 중립이 중요
핵물리학자이자 작가이며 투자전문가인 니감 아로라는 위의 두 가지 예측 모두를 뒷받침할 확실한 자료가 없다고 지적한다. 아로라는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또 금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확실히 예측할 수 없다"며 "(예측을 위한) 자료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아로라는 역사적으로 투자자들이 정치적으로 중립일 때 이익을 낼 수 있었다며 한 진영에 치우치지 말고 여러 시나리오를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금 투자자들 사이에 '금값은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천천히 상승하지만 내릴 때는 엘리베이터처럼 빠르다'는 격언이 있다”며 “금 시장은 주식이나 채권, 외환 등 다른 시장에 비해서 규모가 작아 외부 변수로 인해 상대적으로 쉽게 변동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국제 금 시세는 지난 2011년 9월 6일 장중 온스당 1911.60달러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로 반전했다. 작년 12월3일에는 온스당 1046.20달러로 추락했다.
아로라는 "금값이 급등할 수도 급락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 대선과 관련 누가 대통령이 될지 확신이 생기기 전에는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희석 기자 heesu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