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31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 북촌한옥마을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상점들은 주말 매출을 기대하며 하나둘 가게 문을 열었다. 기대감에 찬 가게들과 달리 개성공단상회의 공기는 묵직했다. 한국의 전통적 모습을 보존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북촌한옥마을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이 일대 상점들이 즐거운 비명을 쏟아내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개성공단상회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12개 조합사의 제품을 공급받아 일반인들에게 파는 협동조합이다. 지난 1년간 서울 안국점과 서인천점, 대전 둔산점 등 전국에 모두 6개 매장이 운영됐지만, 지난 2월11일 개성공단 폐쇄 이후 제품 공급이 끊기면서 차례로 문을 닫게 됐다. 이 날은 개성공단이 패쇄된 지 정확히 172일째다. 개성공단상회 본점인 안국점의 마지막 영업 날이기도 하다. 지난해 7월 영업을 시작한 안국점은 얄궂게도 1년 만인 2016년 7월 마지막 날 가게 문을 닫는다.
31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위치한 개성공단상회 본점이 폐점을 앞두고 마지막 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안국점은 지난주부터 고별 할인전을 진행 중이다. 고춧가루, 들기름, 의류, 액세서리, 화장품 등 진열대에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제품들이 남아 있었다. '할인'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할인 앞에 붙은 '고별'이란 말은 물건을 고르는 소비자들을 씁쓸하게 했다. 상회를 찾은 50대 한 여성은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구매했었다"며 "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보니 단골이 됐는데, 상회가 폐점한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안국점의 경우 지난해 5월 가오픈 이후 7월 정식 오픈을 하며 매출이 본궤도에 올랐다. 월 매출액도 5000~6000만원을 꾸준히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월 1000만원씩 적자가 났고, 더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되자 7월 폐점 결정을 내리게 됐다.
누구보다 마음 아픈 사람은 상회 주인이다. 안국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진조 개성공단상회 운영총괄부장은 "2월 이후에 재고를 판매하면서 어떻게든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까지 오면서 폐점을 결정했다"며 "할인 기간 매출이 10배 이상 늘었다. 더 마음이 아프다. 개성공단상회를 하면서 보람이 컸는데 이렇게 문을 닫으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순간 그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정부에 대한 원망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개성공단 폐쇄가 원인이 됐지만 적절한 사후 조치가 이뤄졌다면 폐점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전격 통보하면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개성공단상회도 직격탄을 맞았다. 오픈식을 앞두고 있던 서울 군자역점, 강남점, 대전 노은점은 손님 한 명 맞이하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로 폐점에 이른 개성공단상회 대리점들은 직접투자 진출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대상에서도 제외됐다. 현재 개성공단상회 전국 6개 매장 가운데 본점인 안국점을 포함해 4개 매장이 폐업했으며, 북한산성입구 아웃도어점과 서인천점은 대리점주 의지로 개성공단상회 간판을 유지하고 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