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해야 오래 살 수 있는가’에서 ‘어떻게 해야 젊게 잘 살 수 있는가’로 관심이 이동했다. '양'에서 '질'로의 이동이다. 피부미용을 위한 코스메슈티컬(cosmeceutial) 시장에 대한 주목도 커졌다. 코스메슈티컬은 ‘화장품(cosmetics)’과 ‘의약품(pharmaceutical)’의 합성어로, 단순한 미용기능을 넘어 피부재생, 주름개선, 피부미백 등 치료기능을 더한 일종의 기능성 화장품을 일컫는다. 성장세로 가파드다. 한국의 시장규모는 약 5000억원 정도로 연간 15%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웃 중국은 매년 20% 이상 성장해 오는 2020년 시장규모가 약 870억위안(1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관련업계의 관심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업체 중 하나가 고운세상코스메틱이다. 창업자인 안건영 대표는 어린 시절 입은 화상을 스스로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피부과 전문의가 됐다. 지금은 ‘건강한 피부, 행복한 피부’를 모토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첫 인상은 무척이나 젊고 세련됐다. 1965년생으로 나이가 만으로 50세를 넘겼고, 결혼해 분가한 자식도 있지만 4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가 인상적이었다. 고생 따위는 모르고 자란 귀공자풍 외모의 소유자지만, 사실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어쩌면 안 대표의 인생 항로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그가 돌을 막 지난 시기에 상당 부분 결정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건영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고운세상코스메틱
그는 “아기 때 우유만 마시면 설사를 했다”며 “그래서 어머니는 우유를 끓여 먹이곤 했는데, 어느 날 그게 쏟아져 얼굴 오른쪽에 큰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흉터는 그를 괴롭히는 콤플렉스가 됐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돼 상처를 받았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자신을 일종의 실험 대상처럼 취급하는 의사들의 권위적인 태도에 마음의 상처는 더욱 커졌다. 그러한 고통 속에 안 대표는 “내 흉터는 내가 고치겠다”는 각오로 피부과 전문의가 됐다. 1990년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일본 준텐도 의대 피부과 연구강사가 돼 피부 재생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1998년에는 서울 돈암동 성신여대 앞에서 ‘고운세상 피부과’를 열고 개원의가 된다. 그의 나이, 만 33세 때다.
30대의 젊은 병원장은 기존의 권위적인 병원 문화부터 타파해 나갔다. 안 대표는 “병원의 모든 서비스는 의사가 아닌 고객인 환자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병원을 운영했다”며 “호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발레파킹 서비스를 업계 최초로 실시했고, 간호사가 간호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금의 코디네이터격인 상담원을 별도 채용해 고객 만족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치료가 장사냐. 의사 체면 떨어지게 뭐하는 거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지만, 그 비판 강도만큼이나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의 경영철학에 공감한 동료 의사들도 늘면서 고운세상 피부과는 어느새 전국 20여개 병원이 가입한 네트워크 체인으로 성장했다. 안 대표는 “고운세상 네트워크는 병원에서 수년간 함께 일해 우리의 철학과 시스템을 이해하는 의사들만 함께 할 수 있다”며 “네트워크 안에서 전문의들이 함께 연구해 그 성과를 공유하고 각종 비용절감도 가능해져 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운세상코스메틱 경기도 분당 본사에 회사가 그동안 개발한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피부과학을 통한 고객행복”…화장품에서 의료기기, DNA 스킨케어까지
고운세상코스메틱은 고운세상 네트워크를 지원하기 위해 2003년 설립됐다. 안 대표는 “환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좋은 화장품이 뭐가 있는지 고민하다가, 우리가 직접 개발해 판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Dr.G(닥터지)’라는 브랜드로 출시된 제품은 당초 고운세상 네크워크 안에서만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피부과 전문의들이 만든 기능성 화장품’으로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끌었다. 2006년부터 해외 수출길에도 올랐다. 반응은 뜨거웠다. 홍콩 시장 진출 1년 만에 수출 100만 달러를 돌파했고, 2007년 이래 비비크림 분야에서 줄곧 1위를 기록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수출 지역은 미국과 중국 등 22개 국으로 늘었다. 2014년에는 한국무역협회로부터 5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화장품 다음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분야는 의료기기다. 2013년 4년간의 연구 끝에 출시된 고주파 여드름 치료기 아그네스(Agnes)가 대표적이다. 여드름의 원인인 피지선을 고주파로 파괴해 여드름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준다. 여드름뿐만 아니라 눈밑 지방, 눈가 주름, 제모 치료 등도 가능하다. 발매 첫 해 국내 병원들을 대상으로 약 2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최근에는 유럽연합(EU) 통합안전인증(CE)과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해외 수출의 길도 열렸다.
최근에는 ‘마이 스킨 멘토(My Skin Mentor) DNA’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의 유전자(DNA)를 검사해 맞춤형 스킨케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30일 피부 노화나 탄력, 색소 침착 등의 12가지 항목과 관련된 일부 유전자 검사를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가능하도록 규제를 해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안 대표는 “비싸고 유명한 외제 화장품을 사용해도 자신의 체질과 맞지 않으면 피부 트러블만 생기는 경우가 있다”며 “대중화된 DNA 검사를 통해 선천적으로 개인이 가진 피부 타입을 분석하고 후천적 요소도 고려해 각 개인에게 맞는 피부 솔루션을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4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매출 100억원을 넘어섰다. 1000만달러 수출 돌파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코스닥에도 상장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무리한 사세 확장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안 대표는 “투자를 하겠다는 제의도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철학과 맞는지 여부”라며 “단순히 회사 매출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피부과학을 통해 사람들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건영 대한브랜드병의원협회장이 지난해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대한브랜드병의원협회
“의료산업화 서둘러야…한국의 잠재력은 세계 최고수준”
안 대표의 다양한 이력 가운데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대한브랜드병의원협회 활동이다. 협회는 대한민국 의료기관의 글로벌 브랜드화를 추구하는 의료 영리화 단체다. 해외환자 유치를 극대화하고 국내 의료기관 및 의료서비스의 해외 진출을 도와 의료산업 발전에 앞장서기 위해 결성됐다. 안 대표는 지난 2014년 초대 회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직을 수행하고 있다.
사회 일각에서는 의료 영리화가 의료의 공공성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안 대표는 세계 의료시장의 국경이 급격히 개방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국의 의료 영리화 혹은 산업화는 피할 수 없는 길이며, 의료 서비스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의료도 서비스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환자가 편하다. 한국 의료계는 거의 모든 분야가 공공재라는 이유로 묶여 제대로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역대 정부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했지만, 이런저런 정치·사회적 이유로 지금까지 잘 안 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부분은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산업화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며 “공공의료의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병원은 세제 혜택 등을 강화해 비영리법인으로 갈 수 있도록 하고, 영리법인을 하겠다는 병원은 회계 등을 투명하게 해서 그만큼 세금을 더 거둬들이면 된다”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과 정보통신(IT), 생명공학(BT) 기술을 가지고 있어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시장 규모가 작아서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라면서 “국내에서 제대로 된 의료 산업화를 이끌 수 있다면 의료관광 등 세계 의료산업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