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부채

오늘 부는 바람은 / 시선

입력 : 2016-08-29 오후 7:19:05
거실의 널찍한 가죽 소파는 혼자 남겨졌다. 대신 바닥에 깔린 대나무 깔개가 뜨끈뜨끈한 엉덩이들을 맞았다. 아파트 꼭대기 층인 할아버지 댁은 여름만 되면 더웠다. 모기조차 자취를 감출 만큼 더운 올해는 대나무 깔개의 시원함으로는 부족했다.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의 손에 들린 부채를 원망스럽게 쳐다본다. 
 
“할아버지이, 너어어어무 더워요. 에어컨 켜요, 창문 닫고. 네?”
 
옆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던 동생이 눈을 반짝 든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가득 찬 눈이다. 엄마와 이모들도 ‘애들 덥다’ 며 할아버지를 부추긴다. 그때서야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신 할아버지가 안방에서 들고 나오신 것은, 날개 네 개짜리 하늘색 선풍기. 그것도 ‘약풍’ 으로 맞춰진 선풍기가 덜덜거리면서 돌아간다. 조그만 사촌동생들이 그 앞에서 “아~”를 해보겠다며 몰려들고, 더위와 짜증만 심해진다.
 
“00 아파트 관리실에서 주민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립니다.··· 전력이 모자란 상황입니다.··· 정전될 수 있으니 가정 내 전기 사용을 최소화 부탁드립니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저런 방송을 들었다. 방송은 언제나 더위가 가장 정점을 찍었을 때 나왔다. 나와 동생은 저런 방송이 나와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정전이 되더라도, 더워 죽는 것 보다는 낫다며. 그리고 이런 방송이 나오면 가장 먼저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 노인들을 걱정했다. 우리 할아버지 같이.
 
우리나라 전기 누진제는 독특한 점이 많다. 가장 독특한 점은 산업용 전기에는 붙지 않는 누진요금이 가정용 전기에는 붙는다는 것이다. 가정용 전기는 전체 전기의 13%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누진요금이 붙지 않는 공장은 전기를 부담 없이 끌어다 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력공사는 ‘녹색환경경영’을 하나의 모토로 추진하면서 기업의 녹색경영을 촉진하고 있다.
 
또 다른 독특한 점은 가정용 전기의 누진요금이 턱없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누진제는 사용한 전기량에 따라 기본요금 6단계와 전력량요금 6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한 단계는 100kWh를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500kWh를 초과하면 6단계가 된다. 기본요금의 1단계는 410(원/호) 이고, 전력량 요금은 1kWh 당 60.7원이다. 기본요금과 전력량 요금 모두 누진요금이 붙기 때문에 6단계부터는 기본요금이 1만2940원, 전력량요금이 709.5원으로 무려 12배 가까이 폭등하게 된다. 
 
간단한 예로 일반 가정에서 냉방능력이 6000W, 효율이 5.2W/W 정도인 에어컨을 하루 6시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에어컨으로 증가되는 요금만 약 11만5000원 정도의 어마어마한 요금이 나온다. 하지만 같은 양의 전기라도 산업용이라면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6만4000원 밖에 되지 않는다.
 
주택용 전력 전기요금표. 자료/한국전력공사 제공
 
해외의 사례를 보아도 우리나라의 누진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한국전력공사(KEPCO) 경제경영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전기를 공급하는 회사가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면 누진제는 3단계로 나누어진다. 또한 계절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 여름철에는 1단계와 최고 단계 차이가 1.1배 정도로 작다.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최고 단계와 최저 단계의 차이는 1.6배 정도이다. 최고/최저 요금 비율이 일본의 경우 1.5배, 캐나다 1.5배, 프랑스 1.0배, 독일 1.0배로 11.7배에 육박하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전기요금이 19.6% 가량 폭등했던 이명박 정부 당시 전기요금 인상의 이유는 ‘국민의 전기 과소비를 막는다’, ‘원유 가격의 폭등’ 등 이었다. 하지만 OECD 주요국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2012년 기준 1278 kWh (출처 : 에너지경제연구원)으로 26위를 차지했다. 즉 생활수준에 비하면 전기 과소비와는 거리가 굉장히 멀다는 소리다. 원유 가격 역시 박근혜 정부에 접어들어 폭락했다. 즉 이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지 못하는 최소한의 이유를 정부에선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 누진제는 알바하는 취준생 딸, 긴팔 정장으로 출퇴근하는 엄마, 그리고 더운 집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할아버지와 같은 서민들의 삶에서 시원함을 앗아간다. 특히 고집 센 노인에게는 누진요금이 자식들이 걱정할 하나의 이유가 된다. ‘요금이 많이 나와도 좋으니, 건강하셔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은 올해 온열질환자 가운데 26.8%가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뉴스에 철렁한다.
 
오늘도 날씨는 뜨겁고, 핸드폰에는 국민안전처가 보낸 폭염주의보가 경고메시지를 울린다. 이런 날에도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대나무 깔개에 앉아 손에 부채를 쥐실 것이다. 다달이 날아오는 청구서에 숫자가 조금이라도 커질까봐 노심초사하시면서.
 
 
 
라진주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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