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맛지도] 훼드라, 그 시절 ‘최루탄 라면’이 있는 곳

입력 : 2016-08-31 오후 4:30:34
세계 라면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이며, 한국 사람이 소비하는 라면의 양은 1년에 일흔여섯 봉지다. 한국 라면 애호가들의 다양한 입맛 덕에 비빔면, 짜장 라면, 흰 국물 라면, 짬뽕 라면 등 라면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훼드라의 최루탄 라면. 사진/바람아시아
 
신촌의 ‘훼드라’는 그 중 가장 매운 라면을 맛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곳이다. 속이 확 풀리는 해장라면, 일명 ‘최루탄 라면’이 훼드라의 대표 메뉴다. 뒷머리부터 얼얼해지는 라면의 매운 맛이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풀기에 제격이다. 과제 더미에 짓눌릴 때, 조모임 ‘하드캐리’를 도맡았을 때, 최루탄 라면은 심리학 교양 수업에서 배운 스트레스 대처법보다 더 빠르고 확실한 한 방이 되어 준다. 가게 바로 앞 신촌 현대백화점 직원들도 장사가 안 될 때마다 화를 바락바락 내면서 찾아왔다가 평온을 되찾고 나간다고 한다. 
 
맛의 비결은 청양고추다. “매운 맛은 청양고추로만 내요. 캡사이신 이런 거 안 들어가고. 따로 감미를 안 시키고 조개, 바지락으로 국물 맛을 내기 때문에 깔끔하고 맛있어요.” 사장님은 단순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계속 땡기는 맛이 이 곳 라면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소주 한 병, 계란말이와 함께 먹으면 라면 맛이 더 좋다. 사진/바람아시아
 
 
라면 속 청양고추. 사진/바람아시아
 
 
그렇기 때문에, 정말 맵다. 밥그릇만한 물그릇에다 물을 가득 담아 퍼마시게 된다. “예전에는 진짜 맵게 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건더기를 남겨서)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그리고 사람들이 먹고 쓰러져. 119까지 실려 가고 그랬어요. 너무 맵고 그래서 사람들이 또 지금에 와서는 덜 넣어달라고...” 연약한 장이 걱정되는 사람들을 위해 주문 전 “덜 맵게 해주세요” 하고 말하면 사장님이 적당히 얼얼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조리해 주신다. 
 
최루탄 라면이라는 특이한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사장님이 직접 유래를 설명해 주었다. “예전에, 70년대에는 대학생들 데모가 진짜 많았어요. 거기서 이름을 지었죠. 이 라면을 먹으면 최루탄 터졌을 때처럼 눈물 콧물 다 뺀다 해서 최루탄 해장라면이라고 지은 거예요.” 1973년부터 훼드라는 당시 대학생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훼드라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80년대였다. 그 시절 연세대와 인근의 서강대, 이화여대 등의 운동권 학생들이 줄곧 찾아와서는 시끄럽게 떠들면서 시국을 토로하고, 목소리 높여 운동권 가요를 부르던 곳이었다...어두침침한 실내에 선술집에서나 볼 수 있던 낡은 탁자를 젓가락으로 두들기며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쳐 불렀다.
 
(칼럼 ‘그 시절, '훼드라폐인' 아닌 사람 있었을까’ / 박래군)
 
옛 인테리어 그대로 남아있는 가게 모습. 사진/바람아시아
 
 
옛 인테리어 그대로 남아있는 가게 모습. 사진/바람아시아
 
 
훼드라에는 가겟방 안에 모여 앉아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던 대학생들의 수많은 밤이 있었다. 사장님도 학생들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공판정을 찾아다니고, 영치금을 넣고, 감옥에서 나온 학생들에게 두부를 내어 주기도 했다. 현재 사장님은 1대 사장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가게를 이어받은 분이다. 상호명은 1962년에 만들어진 옛 영화 <Phaedra>에서 따왔다. 이전에는 가게에서 영화 주제가들을 틀어주기도 해서 그렇다고 한다. 지금도 예전 모습 그대로 인테리어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된 그 때 그 대학생들은 지금도 꾸준히 훼드라의 문턱을 드나든다.
 
 
“신입생들도 들어오고 했으니까 훼드라에서 한 잔 하자. 어딘진 알지? 로타리 건너편 백화점 뒷문에 있는 거.”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대사다. 최근 간판을 새롭게 꾸몄다. 사진/바람아시아
 
훼드라는 일주일마다 가게가 하나씩 사라지고 바뀌는 이 곳 신촌에서 얼마 남지 않은 옛 흔적이다. 1991년부터 25년간 신촌을 지키던 ‘향 음악사’가 올해 3월 사라졌고, 90년대를 주름잡던 음악 카페 ‘우드 스탁’, ‘도어스’와 1971년에 만들어져 폐업했다가 최근 다시 부활한 ‘독수리 다방’ 정도만 남았다. 신촌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많이 변했고, 이제는 대학생들의 정겨운 공간이라고 부르기엔 사뭇 어색한 모습이다. 사장님은 2013년부터 시행된 ‘신촌 차 없는 거리’ 이후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이 쪽(창천공원 부근) 상권이 더 죽고 있다며 말씀 중간에 계속 한숨을 쉬셨다.
 
최루탄 라면 외에도 다양한 메뉴가 있다. 사진/바람아시아
 
위치는 창천공원을 지나 신촌 현대백화점 뒷문 맞은편에 바로 보인다(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62-4). 24시간 영업이라 언제 어느 때나 찾아가도 좋다. 40년 전 인테리어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가겟방 한 쪽에 앉아 선배 대학생들의 정취를 느끼며,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을 라면 국물과 함께 시원하게 들이켜 보자.
 
 
 
김서영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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