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희석기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6월 말 취임한 이후 전통적 우방인 필리핀과 미국 관계가 흔들린다. 양국 간 군사 협력도 약해지는 분위기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던 중국과는 반대로 해빙기에 들어섰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국제 분쟁보다 마약 등 국내 문제 해결을 중시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13일(현지시간) 필리핀 현지 매체 ABS-CBN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날 저녁 필리핀 파사이시의 빌라모어 공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 러시아로부터 군사 장비를 제공받는 것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비행기 의사도 밝혔다"며 "베이징이 '나'를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종류의 무기를 제공할 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불과 얼마전까지 필리핀과 중국이 남중국해 일부 섬에 대한 영유권을 둘러싸고 심각하게 대립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중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 해결을 위한 양자대화도 제안했다.
중국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인 '마약과의 전쟁'을 지원한다. 포화상태에 빠진 필리핀 재활센터 추가 건립을 위해 자재를 제공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의 해군과 공동으로 진행하던 남중국해 순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13일(현지시간) 필리핀 파사이 빌라모어 공군기지를 방문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왼쪽 세번째). 사진/AP
"나는 미국이 싫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과의 협력에 소극적이다. 최근 미국인 '인권'을 이유로 필리핀 정부의 마약 정책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관계는 더욱 멀어졌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인권 문제를 언급하면 '개XX'라고 부르겠다고 말해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취소되는 등 파문이 일었다. 지난 12일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활동하는 미군 특수부대의 철수도 요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남중국해 분쟁 대신 마약 공급 차단이나 테러 방지에 군사력을 쓰려는 계획"이라고 분석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싸울 계획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F-16 전투기는 필요없다"며 "대신 마약이나 테러와 싸우는데 필요한 무기를 갖자"고 말했다.
유희석 기자 heesu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