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1세대 거인들 '야속한 세월'

대상·오뚜기, 별처럼 진 거목들…퇴장 앞둔 8090 회장님들

입력 : 2016-09-22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광표기자] 노익장을 과시하던 식품업계 창업주 1세대들이 퇴장하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를 만든 장본인들로 유독 장수하는 창업주들이 많았지만 야속한 세월의 무게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이제 공은 2세대 경영자들에게 넘어가는 분위기다.
 
국내에 카레를 대중화한 일등 공신인 함태호 오뚜기(007310) 명예회장은 추석을 앞둔 지난 12일 향년 8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오뚜기를 창업한 이후 47년간 국내 식품산업의 발전을 위한 외길 인생을 걸어온 한국 식품산업의 산증인이다.
 
1969년 40세가 되던 해 오뚜기식품공업의 전신인 풍림상사를 창업한 함 명예회장은 1969년 국내 최초의 즉석식품인 3분 카레를 출시하며 시장에서 공전의 히트상품으로 만들었다. 또 1971년에는 토마토케찹을 내고 이듬해에는 마요네즈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제 오뚜기는 2010년 회장직을 넘겨 받은 2세 함영준 회장에게 공이 넘어가게 됐다.
 
국내 조미료의 대명사가 된 미원을 만든 임대홍 대상(001680)그룹 명예회장도 지난 4월 9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일본에서 조미료의 성분인 글루타민산 제조 방법을 연구한 임 명예회장은 이듬해 부산으로 돌아와 동아화성공업을 세웠다. 여기서 국산 최초의 발효조미료를 만들었고 오늘날의 미원을 탄생시켰다.
 
임 창업주는 삼성그룹의 이병철 창업주가 평생의 한을 갖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조미료 시장에 진출할 당시 최고의 대표 브랜드인 '미원'을 꺾으려고 온갖 마케팅을 펼쳤으나 '미원'의 높은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상은 1997년 임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명형섭 대표가 이끄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오는 11월 창립 60돌을 맞는 가운데 오너가 3세인 임세령, 임상민 상무가 경영보폭을 넓히며 선대의 경영이념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식품업계의 두 거목이 떠난 가운데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장수하는 1세대 창업주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후손들에게 승계작업을 마무리하고 명예로운 은퇴를 준비 중이다.
 
식품업계 최고령 창업자는 1917년생 정재원(99) 정식품 명예회장이다. 국내 최초 두유 개발자인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00년 현업에서 물러나 콩에 대한 최신 해외 연구 동향을 살피고, 후학양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인류 건강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고저'를 정식품의 창업이념으로 삼은 그는 지난 2010년 2세인 정성수 회장에게 가업을 물려줬다.
 
박승복(94) 샘표(007540) 회장은 여전히 본사에 매일 출근하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지만 최근 샘표와 샘표식품(248170)으로 회사가 분할되면서 실질적 경영권을 장남 박진선 사장에게 넘겨준 상태다.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을 지낸 박 회장은 1976년 샘표식품 회장 자리에 올랐으며 샘표의 지주사 전환을 기점으로 경영 일선에서 퇴장을 앞두고 있다.
 
신춘호(86) 농심(004370) 회장은 아직도 일주일에 2~3일 출근해 주요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 현안을 챙기고 있지만 경영을 장남 신동원 농심 부회장에게 맡긴 상태다. 
 
'한국 원양어업의 개척자' 김재철(81) 동원(003580)그룹 회장은 일찌감치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에게 금융 사업을, 차남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회장에게 식품 사업을 맡겨 후계구도를 정리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업계 1세대 창업주들이 떠난 자리에는 이미 2세들이 속속들이 들어앉아 정면 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산업화 흐름 속에 기업을 일군 1세대 거인들과 달리 2세대 경영자들은 글로벌 시장과 다양한 업종과의 경쟁구도 속에 가업을 지켜내야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향년 96세, 86세의 일기로 별세한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왼쪽)와 함태호 오뚜기 창업주. (사진제공=각사)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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