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기자] “임산부 오면 비켜주려고 했어요”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 지 3년이 다돼가지만 여전히 임산부들은 이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2013년 보건복지부 요청에 따라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 양 공사는 열차 내 임산부 배려석을 운영해오고 있다.
22일 시에 따르면 현재까지 1~8호선 내 임산부 배려석은 총 7140석으로 열차 한 칸에 2개의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돼 있다.
지난 21일 오후 6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던 40대 남성에게 다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이유를 묻자 “자리가 비워져 있어 앉았다”며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비슷한 시각 다른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대학생 최모씨 역시 “잠깐이라도 잠을 자려고 빈자리를 보면 반사적으로 앉게 된다”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열차 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다. 사진/조용훈 기자
김씨나 최씨처럼 대부분 시민들은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기보다는 앉아있다가 양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지하철과 버스 등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남자들의 모습을 공개하는 소셜미디어 페이지까지 등장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양 공사는 각종 캠페인과 안내방송 등을 병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진 못하고 있다.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경우 지난해까지 편도 1회 실시하던 차내 임산부 배려석 안내방송을 올해부터 2회로 늘리고, 역사 내 1일 10회에 걸쳐 안내방송을 하고 있다. 5~8호선 관리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도 지난 3월부터 매월 셋째 주 수요일 임산부 배려석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평소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한다는 임신 6주 차 이민아(31·여)씨는 “안내방송을 해도 효과가 있겠냐”며 “나도 그렇지만, 자기가 임산부라고 말하면서 자리를 비켜달라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시내버스 내 임산부 배려석에 한 남성이 앉아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사진/조용훈 기자
실제로 열차 내 임산부 배려석 관련 안내방송이 나와도 시민 대부분은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시청해 방송을 듣지 현재로써는 임산부 배려석에 강제성을 부여할 수 없어 결국 ‘시민의식’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홍보를 강화해 달라거나 인식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들어오지만 아직까지 (임산부 배려석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부분인 거 같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시 지난 1월 임산부 배려석을 좀 더 알아보기 쉽게 디자인인 하겠다는 개선 계획을 밝히고, 당초 벽면에 붙어있던 엠블럼 스티커를 벽면부터 의자, 바닥까지 전체를 분홍색으로 바꾸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지난달 1~4호선 내 임산부 배려석 총 3908석에 대한 디자인 개선을 마쳤으며, 도시철도공사 역시 빠른 시일 내에 개선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임산부 배려석 캠페인이 기존 ‘양보하기’에서 ‘비워두기’로 바뀐 만큼 좀 더 적극적인 시민 홍보를 통해 임산부 배려석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게 노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오전 1호선 인천행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 자리가 비워져 있다. 사진/조용훈 기자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