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땅거미가 질 무렵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어떤 골목이었을까. 지나던 원룸형 오피스텔 입구에서 중년의 부부가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대인데.’ 가만히 곁눈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빈 장가방을 척척 접어 핸드백에 집어넣는 여성의 얼굴은 편치 않아 보인다. 느릿느릿 뒤따르던 남성이 길가의 벽돌을 시큰둥하게 차버리자 여성이 바락하고 잔소리를 한다. “여가 우덜 애가 사는 집인디, XX이(이름) 걸려 자빠져불믄 우짤라고. 퍼뜩 치워버리소.”
자가용을 가져오지 않았는지 부부는 고속버스가 어쩌구 터미널이 어쩌구 하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이내 자리를 떴다. 말씨로 미루어 보건대 전라도 어디서 하루 올라와 장가방 가득 챙겨온 먹거리를 아들인지 딸인지 챙겨주고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이웃집에, 집집마다 살고 있는 ‘우리 애’를 챙기는, 평범한 부모의 모습이었다.
2016년 9월 1일에서 2일, 양일간 제3차 세월호 청문회가 열렸다. 사진/오마이뉴스 제공
이날은 이틀간 이어진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제3차 청문회가 끝난 날이기도 했다. 정부가 특조위 조사활동 기간을 6월 30일로 못 박았지만 특조위원들은 이에 반발하며 자비를 털어 조사를 강행했다. 국회의원회관에서 한 번, 사학연금공단에서 한 번. ‘국회(사학연금공단)에서 청문회를 주관 혹은 주최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대관조차 거절당하길 두 차례. 우여곡절 끝에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를 처연한 청문회가 열렸다.
특조위가 해경이 공개한 2014년 4월 15일부터 5월2일까지의 TRS(Trunked Radio System, 주파수 공용통신) 무선통신 기록을 분석한 결과, 해경이 여론을 잠재우고 청와대에 보고하기 위해 에어포켓 공기주입·수중무인탐사로봇 진입을 부풀려 발표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 선체 내 폐쇄회로 CCTV 영상 삭제 의혹 또한 제기되었다. 검증을 마친 비참한 사실들이 쉴 새 없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참사가 벌어진 날부터 팽목항에서 해경 활동을 지켜보던 유가족들 틈에 사복경찰을 투입했던 사실, 제주해군기지 공사현장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던 철근이 과적되어 배가 넘어지는 과정에서 복원성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 사활을 걸고 밝혀낸 사실들은 특조위의 존재가치를 방증하고 있었다. 아직 더 밝혀질 사실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
해경은 세월호특별법이 발의된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참사 이후의 모든 대처과정이 기록된 TRS의 나머지 기록들을 공개하기 꺼려해 왔다. 8월, 을지훈련이 끝나고 오라던 해경은 급기야 3차 청문회 직전에 별안간 ‘기록 열람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해경의 상위기관인 국민안전처 측은 이에 대해 “특조위 활동 종료에 따라 7월 이후에는 파일을 넘기기 전 보안사항이 포함된 부분을 분류하는 작업을 멈춘 것”이라며 “특조위 활동이 보장된다면 남은 파일도 분류해 제공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통보한 특조위 종합보고서 및 백서 작성기간은 이달 말일까지다. 이마저 종료된 이후엔 사법적 정당성이 확보된 진상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결국 돌파구는 특별법 개정인데, 9월이 끝나가는 현재까지도 이와 관련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청문회에서 가장 자극적인 순간이었을까. 에어포켓을 주입한 19mm짜리 호스를 권영빈 특조위 진상규명 소위원장이 들고 있는 모습이 사진에 담겨 9월 1일부터 하루이틀 페이스북과 포털사이트 검색순위를 오갔다. 청문회가 받은 조명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그마저도 곧 자취를 감췄다. 언론사 보도 또한 무소식에 가까웠다. JTBC를 제외하면 방송사 메인뉴스에서의 집중보도는 없었다. 청문회 내용을 전달하려 지면을 할애한 신문사는 <한겨례>, <경향신문>, <한국일보>뿐이었다.
철썩이는 파도 아래 나 대신 보냈다던 에어포켓과 탐사로봇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자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들의 등이 들썩였다. 곡소리는 날지언정 큰소리는 나지 않았다. 양일간 분노는커녕 화풀이를 할 만한 사람들은 청문회 장소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청문회가 끝나고 돌아온 일상에는 평범한 부모들이 있었다. 내 자식 해칠 것은 ‘퍼뜩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 가방 가득 맛난 것을 챙겨다 줘도 돌아가는 길 몇 번씩 뒤돌아보는 마음. 똑 닮은 마음을 가졌지만 ‘평범하지 못한’ 부모들은 광화문으로 돌아갔다. 추석이 찾아오고 끝나가는 동안 묵묵히 남은 날에서 하루를 지웠다. 그들은 남일까. 잊어버리면 세월호는 남의 얘기가 될까.
바람이 차졌다. 광화문 농성장에서 들은 민중가요 한 구절이 속절없이 귓가에 맴도는, 간절한 9월이 저물어 가는 중이다.
“내가 왜 세상에 농락 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 꽃다지, 내가 왜 中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