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태풍 예고에 재계 긴장감 역력

신상필벌 원칙으로 책임 묻는다…실적 외에도 경영권 승계·지배구조 개편 '변수'

입력 : 2016-10-05 오후 6:18:45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연말 인사를 앞두고 재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구체적 실명을 포함한 대대적인 인사개편 설이 나돌면서 자리 보전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저성장 고착화로 구조 혁신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총수들도 ‘변화와 혁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구성원들에겐 인사 칼바람을 예고하듯 들린다.
 
재계 관계자는 5일 "올해 들쭉날쭉한 실적으로 외부 변화에 민감한 취약점이 더욱 잘 드러났다"며 "기존 방식으로는 안정적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경영진의 인식이 팽배해 인사도 예년과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적이 너무 부진할 때는 오히려 임직원 사기를 고려해 인사 폭이 작을 수 있지만 사업별 실적 편차가 클 경우에는 신상필벌의 인사원칙이 부각된다"고 말했다.
 
'안정 속 성장'이 짙었던 경영기조도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에 쾌재를 불렀던 SK는 올 들어 급격한 하향세 충격으로 변화의 기치를 높였다. 이례적으로 모바일사업 조직개편을 단행한 LG도 내부적으로 무거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삼성은 갤럭시의 부활 직후 사상 초유의 리콜 사태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공과를 구분해 인사 폭이 클 수 있다. 승계구도와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인사에 영향을 미칠 상수로 꼽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특유의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신상필벌의 원칙을 고수해왔다. 삼성디스플레이 수장을 교체한 것이 대표적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겸임하면서 CEO(최고경영자) 자리를 비워두는 파격 인사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2분기까지 호실적을 낸 모바일 사업에서 다수의 승진자가 나오는 동시에 배터리 폭발 문제를 일으킨 책임자를 교체하는 '핀셋' 인사가 뒤따를 수도 있다. 한 관계자는 "돈 되지 않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한다는 게 빅딜 등을 통해 드러난 이 부회장의 원칙"이라며 "이는 인사와 조직개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는 만큼 이 부회장의 색깔은 보다 뚜렷해질 것이란 게 삼성 안팎의 공통된 관측이다. 컬처혁신 등 조직문화를 바꾸는 시도에서부터 대대적 인사쇄신이 이어질 것이란 시각이 있다. 사업개편을 통해 지배구조는 어느 정도 확립됐다. 미래전략실 등의 인사를 통해 친정체제를 강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회장 승진도 점쳐지지만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해 인사 폭이 작아 안정에 중점을 둔 인상이 강했다면 올해는 스타트업 혁신 등 구조 개편이 활발하고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까지 더해 예측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공백으로 이 부회장 체제에서 치러진 지난 두 차례의 연말 정기인사에선 승진 폭을 줄이면서도 발탁 인사의 비중은 높였다. 젊은 인재도 성과에 따라 파격 대우하는 인사 원칙이 고수됐다. 발탁을 포함한 승진자 중에는 엔지니어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현장중심형 리더를 중용해온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기술·개발 출신을 대거 승진시키며 인사 스타일이 격변했다. 올 들어 LG전자 MC사업본부의 조직개편도 연구소 출신들이 신설된 조직의 총괄직을 맡았다. 모바일 사업 부진에 따른 직접적 문책 성격이 짙었다. 파장은 연말 인사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LG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G5 부진은 단순히 제품의 문제가 아니라 탑다운 방식의 낡은 의사결정 시스템과 기술개발을 등한시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구 회장도 올 들어 강도 높은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며 인사 폭이 적지 않을 것임을 시사해왔다. 그룹 차원에서 차등연봉제를 검토하고 LG이노텍이 생산직의 호봉제를 폐지해 성과 기반 인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인사 실험도 이뤄지고 있다. 경과를 지켜본 다음 그룹 전반에 도입될 수 있다. CEO 재임 기간이 평균 3년을 넘기는 등 재계에서도 LG는 그동안 인사에 보수적이었지만 교체주기도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한 관계자는 "회장이 몇년째 선도경영을 외치며 변화를 주문하고 있지만, 느슨한 조직문화는 개선되지 않았다"며 "실적보다 조직의 변화를 묻는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SK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지만 올해는 SK하이닉스 등의 부진으로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외부 시황에 따라 실적이 요동치는 약점이 노출됐다. 또 삼성전자가 같은 영업환경 속에도 호실적을 낸 것이 구조적 혁신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최태원 회장은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으로 CEO들 앞에서 "근본적 변화 없이는 미래가 없다"며 위기론을 설파했다. 내주 CEO 세미나에서는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조직 혁신 방안이 논의된다.
 
성과주의 인사 원칙에 따라 지난해 인사 폭이 적었던 만큼 올해는 반대로 인사 폭이 클 것이란 예측이 힘을 얻는다. SK 관계자는 "반도체 실적이 하반기 업황 회복으로 반등할 것으로 보이지만 경쟁사에 비해 기술력이 뒤처졌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2014년 정기 인사에서 사장단 인사 폭이 컸던 만큼 관행으로 통용되는 3년 임기 동안은 좀 더 기회를 줄 것이란 의견들도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경영복귀 후 실시한 첫 정기인사에서 젊은 인재의 발탁과 동시에 기존 수뇌부를 중임하는 세대 융합을 시도했다. 올해는 세대교체에 무게중심이 쏠릴 전망이다.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만 해도 연배가 적지 않다. 김 의장은 앞서 2014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스스로 물러날 의향을 표했으나 옥중 최 회장이 만류해 재신임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시는 최 회장의 공백으로 조직의 안정을 도모해야 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최 회장이 복귀한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일각에서는 또 다시 재신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지만 가능성은 낮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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