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기자] 홍채인식 등으로 무장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갤럭시노트7이 데뷔 70일 만에 무대에서 퇴장했다. 배터리 결함 등으로 인한 연쇄 발화 사건에 발목을 잡혔다. 조기 등판과 조기 리콜이라는 섣부른 조기 행보가 조기 단종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스마트폰 역사상 유례없는 참사에 삼성전자는 기술력은 물론 시장 신뢰조차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일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갤럭시노트7의 판매 중단에 따라 생산도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며 단종을 공식화했다. 같은 날 오전 글로벌 시장에서의 판매를 중단키로 한 데에서 더 나아간 초강수 결단이다. 한미 당국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판매를 재개한다 해도 무너진 소비자 신뢰를 극복할 수 있겠냐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 내년 상반기 출시 예정인 갤럭시S8에 대한 부정적 여파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업계에서도 삼성전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공감했다. 판매 중지에 따른 단기 손해는 불가피하지만 빠른 의사결정으로 기업 이미지 손상과 차기 제품의 판매 감소를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평가다. 실제 갤럭시노트7 여파는 컸다. 삼성전자는 12일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을 7조8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으로 정정 공시했다. 매출액도 49조원에서 47조원으로 수정했다. 갤럭시노트7 사태에 따른 매출 및 손익의 변동사항을 반영했다. 연말 최대 성수기인 4분기를 간판 없이 버텨야 하기에 향후 실적 전망도 암울하다.
12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에 갤럭시 노트7을 홍보하던 광고판이 텅 비어있다. 사진/뉴스1
실적 이상의 부정적 여파도 예상된다. 삼성전자 기술력에 대한 시장 의문이 커지면서 후폭풍은 스마트폰 전 제품군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브랜드 이미지가 소비자 구매의 결정적 요소임을 감안하면 가전을 비롯한 모든 완제품에도 직간접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오히려 불확실성만 더 커졌다는 목소리도 있다. 동시에 단종을 야기했던 발화의 원인을 명명백백 규명해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현재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인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과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삼성전자가 공개한 배터리 결함이 아닌 '새로운' 결함 가능성이 존재함을 시사했다. 여러 의혹들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정유섭 새누리당 의원은 갤럭시노트7의 발화 원인이 "배터리 공정상의 결함이 아닌 설계 결함"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삼성SDI와 ATL사의 배터리 관련 인증시험 성적서와 국표원의 현장조사보고서, 삼성전자의 발화원인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갤럭시노트7의 셀 설계도에는 발화 지점으로 지목된 케이스 모서리의 곡면부에 대한 설계가 누락됐다.
또 부품업계 일각에서는 메인보드에 해당하는 인쇄회로기판(PCB)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갤럭시노트7의 높은 성능을 지원하기 위해 PCB의 층을 높이는 과정에서 결함이 생겼다는 것이다. 갤럭시노트7에는 처음으로 12층 0.6t(1t=1000㎛) PCB가 사용됐다. 갤럭시S7, 아이폰6s, LG G5 등 기존 프리미엄 모델에는 10층 0.6t PCB가 적용됐다.
일련의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던 삼성전자에는 치명상이 된다. 배터리 문제로만 치부했던 초기 대응이 성급했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롭기 어렵다. 더구나 갤럭시노트7은 삼성전자가 자랑하는 최상위 프리미엄 모델이다. 미국 기술컨설팅기업인 펀드잇의 찰스 킹 애널리스트는 "최상위 제품 라인에서 결함이 발생했다는 것은 삼성이 엔지니어링, 제조, 부품 조달 등의 과정에 기초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존 도슨 잭도리서치 수석애널리스트는 "삼성의 장기 과제는 동일한 문제가 다른 제품에서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를 심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 출시 예정인 갤럭시S8이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갤럭시노트7에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려는 비용 절감 노력과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려는 혁신을 모두 추구해야만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담보는 기본이다. 협력사들의 기초 체력을 함께 키우지 않고 삼성전자 홀로 성장했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