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던 날씨에 갑자기 찾아온 선물 같은 시원한 바람이 불던 날 ‘몸짓과 소리’ 사무실로 향했다. ‘몸짓과 소리’는 장애아동에게 무료악기레슨을 지원하는 단체다. 플루트 레슨을 지원하는 자원활동가로 활동한 이후 거의 일 년만의 방문이었다. 이곳에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레슨 학생 성호(가명)와 처음 만났었다. 웃는 모습이 매우 예쁜 아이였다. 친화력이 좋은 아이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문제는 음계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곡을 스스로 연주하지 못하자 플루트 부는 것 자체를 싫어하게 된 것이었다. 간단한 게임을 이용해 음계를 가르쳤더니 다행히 점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레슨 시간에 플루트 부는 것이 좋다며 밝게 웃는 성호를 보면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뜻깊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몸짓과 소리’ 덕분이었다. 성호의 밝은 웃음을 떠올리며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몸짓과 소리’의 설립자인 안응호 이사님을 만났다.
안응호 실장님(맨 오른쪽)과 몸짓과 소리의 연구원, 자원활동가들이다. 사진/바람아시아
?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단법인 몸짓과 소리(이하 몸소)의 자원활동가 안응호입니다. 사실은 상임이사인데 내세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웃음) 현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연구실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몸소’는 2008년에 설립됐고 저와 같이 유학생활을 했던 분들과 함께 만들었어요. 사회소외계층 가정의 발달장애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예술교육의 과정과 자료를 연구·개발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발달장애
-선천적으로 또는 발육 과정 중 생긴 대뇌 손상으로 인해 지능 및 운동 발달 장애, 언어 발달 장애, 시각, 청각 등의 특수 감각 기능 장애, 기타 학습장애 등이 발생한 상태
? ‘몸짓과 소리’ 이름과 로고가 예쁜 것 같아요. 담고 있는 상징도 궁금하고요. 주로 음악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용가의 몸동작을 담은 이유가 있나요?
로고에 있는 트럼펫은 악기의 상징이고 몸동작은 음악이나 무용을 상징해요. 색깔도 계절별로 다양한 버전이 있어요. 이 중 보라색 같은 파란색의 로고는 자폐성 장애의 상징 색깔이기도 하고요. 몸짓 연극, 춤은 악기레슨지원활동처럼 저희가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즈음에 국회헌정기념회에서 발표회를 해요. 춤, 노래, 악기 연주 모두 볼 수 있고요. 여러 문화예술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문화예술 중 음악에 국한된 것으로 보이지만 문화예술가족캠프를 통해서 미술, 연극 등에도 접근하고 있어요. 캠프에서 주로 부족한 자금 때문에 진행하지 못 했던 것들을 하죠. 발달장애인들이 문화예술을 접할 때 그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 지원하고 있는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어요. ‘몸소’에서 발달장애 청소년에게 악기대여와 레슨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악기레슨 자원활동가를 뽑을 때 전공생 뿐 아니라 아마추어들도 뽑는다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그 이유가 있을까요?
가르칠 정도의 최소한의 실력을 갖추었다면 뽑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실력보다도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 만나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장애아동과 만나 교류를 하고 레슨해주고 싶은 마음은 고마운 거잖아요. 자원활동가도 학생을 통해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레슨경험이 일 년 지나고 나면 대체 누가 선생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자원활동가분들이 많아요.
?자원활동가들이 특수교육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실수도 있을 것 같아요. ‘몸소’에서는 자원활동가에게 교육지도를 따로 하고 있나요?
그렇죠. 특수교육을 잘 모르시는 분이 많기 때문에 레슨을 하기 전에 1박2일 연수를 듣도록 해요. 자원활동가들이 장애에 대해 이해하고 상황에 따른 지도법을 알 수 있도록 4명의 강사도 초청하고 있어요. 올해는 정병은 교수의 ‘발달장애아동의 특성’, 재활심리학과 김마리아 교수의 ‘장애아동 지도에 따른 문제행동 수정’, 염형국 변호사의 ‘장애인인권과 법’, 변경희 교수의 ‘장애에 대한 이해’ 강의가 있었죠. 발달장애에 대한 학문은 많이 활성화되어있지 않아서 발달장애 전문가는 대신 재활학과 교수를 주로 초청하고 있어요.
? ‘몸소’ 합창단은 발달장애 자녀와 부모가 함께하는 합창단이라는 점이 특별한 것 같아요. 이런 합창단을 만들게 된 이유가 있나요?
지금 ‘몸소’에서 악기를 무료로 배울 수 있다는 소문은 많이 났어요. 그렇게 연락이 오는 곳은 많은데 작년에 비해 예산이 1억이나 줄어서 모든 사람을 지원해주기 힘들어졌죠. 그래서 부모들과 학생이 같이 하면 관심도 많아지고 예산이 확보 되지 않을까 해서 자녀와 함께하는 합창단을 기획하게 된 거예요.
발달장애인들이 합창을 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아요. 발달장애인은 보통 목소리 톤이 높기 때문에 합창이 어려울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는 잘하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즐거운 토요일 오후를 만들어주는 것이 목적이죠. 하모니를 경험 못해본 아이들에게, 직접 경험해보게 하는 것이 목표예요.
?발달장애인 지원 활동을 하는 다른 단체들이 많은데 ‘몸소’만의 차별화된 점이 있을까요?
작년 11월 23일에 ‘발달장애인법’(발달장애인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서 많은 단체들이 생기긴 했지만 저희처럼 자료를 만드는 것에 신경 쓰는 단체는 많지 않을 거예요. 거의 저희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죠. 보건복지부에서 3년마다 장애인 통계조사를 하고 있긴 하지만 깊이가 있진 않아요. 저희는 그런 점을 보완하여 발달장애인에 관련된 통계·설문·교육자료 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행사보고서도 항상 기록해서 책으로 만들기 때문에 국립도서관에서 ‘몸짓과 소리’를 검색하면 관련 자료집을 모두 찾아볼 수 있어요. 하다못해 주 업무 보고서, 통장내역까지 다 나옵니다. 하하. 연도로 정리된 거 다 보이죠. 저거 만드느라 고생했어요. 살 다 빠지는 것 같아.
*발달장애인법
-발달장애인에 대한 구체적인 장애범위, 그 가족이나 보호자 등의 특수한 수요에 부합될 수 있는 지원체계 및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설립의 근거를 제정함으로써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 보호자 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여 국민 전체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정함 <법제처 제공>
‘몸소’ 사무실 서가에 자료집이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다. 사진/바람아시아
?사무실에 진열된 자료만 봐도 그 수가 엄청난 것 같아요. 음악 교육 자료도 많은 것 같은데 교육 자료를 만드는 것에 힘쓰는 이유가 있나요?
UN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여러 일을 하는데, 한국도 UN의 국제 장애인 권리 협약을 따르고 있어요. UN에서 통합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행하라고 하지만, 문제점은 한국에서는 개별교육을 따로 해본 적도 없는데 통합교육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비록 특수교육 교과 과정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전문적 교과과정이 미약해요. 그래서 저희가 자료를 만들어내는 거죠. 작년엔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음악지도안, 음악교과과정을 SK텔레콤과 함께 만들어냈어요. 올해는 영어버전도 만들고 있죠. 나중에 버전이 완성되면 PC나 아이패드에서 누구나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할 생각이에요.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 지도안 - 특수학급 중심으로. 사진/바람아시아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 지도안 목차. 사진/바람아시아
? ‘몸소’ 페이스북 활동이 활발한데요. 운영진들의 회의 진행 상황도 페이스북으로 알 수 있더라고요. 주로 어떤 회의를 하시나요?
‘몸소’는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후원금이 들어왔을 때 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에 대한 회의도 진행하고요. 주로 좀 더 나은 활동을 위한 회의를 하죠. 4년 전부터 서울특별시 교육청에서 30개 일반 중고등학교에 있는 특수학급에 강사를 파견하기 시작했어요. 음악시간에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강사들 중에서 음악교육을 음악 치료와 혼동하시는 분이 많았죠. 그래서 발달장애인 음악교육을 위한 지도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만든 게 작년에 나온 지도안이에요. 이처럼 좀 더 나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몸소’는 후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힘든 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지속가능한 단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게 있을까요?
큰 기업체에서 돈을 내주는 것이 좋죠. 그런데 대기업들은 주로 직접 단체를 회사 안에서 만들기 때문에 다른 단체에겐 잘 지원해주지 않아요. 발달장애법이 생기면서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새로운 단체가 많이 생겼는데, 한 번도 행사를 진행해본 적이 없어서 우리에게 자료를 받아가요. 단체에서 모든 자료를 가져가 유사하게 행사를 진행하는데, 새로운 단체를 만드는 대신 우리한테 지원을 해줬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죠.
? 페이스북에 ‘장애를 가진 이공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자폐증에 대한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글 등 다양한 글을 볼 수 있었어요. 게시글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페이스북 관리를 주로 제가 하고 있는데, 발달장애에 대한 글을 싣고 있어요. 저도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지만 화장실이 넓고 엘리베이터만 있다면 생활하는 데 걱정이 없어요. 진짜 어려움을 겪는 건 발달장애인이죠.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부모가 지치면 문제가 돼요. 발달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해외에서 발달장애에 대한 논문이 올라오면 읽고 중요한 내용만 번역해서 올리고 있어요. 아마 제가 한국에서 제일 먼저 발달장애에 대한 논문을 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웃음)
?‘몸소’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몸소의 꿈이 있나요?
저희가 하려는 최종 목표는 발달장애인 기숙학교를 설립해 부모들로부터 독립시키는 거예요. 발달장애인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해야 하는데 자원활동가가 늘 함께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부모도 지칠 수 있죠. 그래서 ‘몸소’ 프로그램에 자녀를 데리고 오시는 부모님들께 항상 감사하다고 해요. 부모와 학생 모두를 위해서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꼭 필요한 거예요.
현재 통합교육을 하려고 다들 힘쓰고 있는데 저는 이론가가 아닌 활동가라 전문적이진 않지만 현장에서 경험해보면 우선 발달장애인들끼리 함께 모여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발달장애인들끼리는 금방 친해지거든요. 교육 자체도 개별교육도 잘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통합교육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거죠. 개별교육이 완성된 다음에 통합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발달장애인 기숙학교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에게 악기를 조립하고 제조할 수 있도록 하는 직업재활교육을 2-3년 정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요. 발달장애인들은 성인이 되어서 일을 하게 되면 단순한 업무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능력을 악기제조 같은 전문적인 분야에 활용하면 전문적인 인력이 될 수도 있겠죠. 발달장애인들이 혼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몸짓과 소리는 발달장애인의 취미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서 발달장애인이 독립적인 삶을 꿈꾸고 실현시킬 수 있도록 고민하는 단체였다. 간단한 의사소통도 쉽지 않아 평생 자녀를 돌봐야하는 장애인 가족들의 힘든 현실을 몸짓과 소리는 알고 있었다. 지난해 발달장애인 법이 시행되었지만 아직 세부 지원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고 몸짓과 소리의 실정도 나아진 바가 없다. 발달장애인이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는 것. 성호와 성호의 어머니, 몸짓과 소리가 함께 꿈꾸는 일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의 더 큰 움직임이 필요하리라.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