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박근혜 대통령,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청년들 보이나

입력 : 2016-10-31 오후 3:32:32
최한영 정경부 기자
#1. 19대 국회 회기 중이던 올해 1월,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젊은 층 사이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인기를 끌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극중 덕선(혜리 분)의 남편이 누구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던 중에 김 의원실 관계자가 트위터에 ‘지금 공군회관에서 응팔의 류준열이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글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네티즌들은 ‘왜 스포일러 글을 올리냐’며 강력 항의했다. 논란이 커지자 의원실은 해당 트윗을 삭제했고 김 의원은 “저의 불찰이다. 더 진중해지겠다”며 사과했다.
 
#2. 지난 29일,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문제를 규탄하기 위해 서울 인사동 초입에 모인 20여명의 청소년들은 중·고등학생 149명이 서명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한 학생이 외친 “지금 시험기간인데도 이 자리에 나왔다. 나라가 망해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날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도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참석한 젊은 층의 모습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집회장소에 조금 늦게 참석한 기자는 인파에 밀려, 단상 한참 뒤에서 인터넷방송을 보며 발언내용을 파악해야 할 정도였다.
 
혹자는 요즘 10·20대를 놓고 ‘사소한 것에 목숨거는 세대’라고 말한다. 김 전 의원실의 트윗글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의 스포일러에는 분개하면서 정작 실제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일들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와 취업에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젊은 층이 현실문제에 관심을 두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치문제의 경우는 더하다. 주요 정당들이 청년최고위원까지 따로 두고 청년층의 정치참여 중요성을 부르짖고 있지만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청년문제 관련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려도 매번 보이는 얼굴만 있거나 곳곳에 빈자리가 생기기 십상이다. 학자들은 잘못된 교육환경 등에서 청년층이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최근 최순실 게이트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청년층의 움직임은 이런 편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해보였다. 29일 인사동에 모인 청소년들을 비롯해 최씨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사람들이 속속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지난 28일 ‘신학생시국연석회의’ 명의 선언문이 가장 인상깊었다. “그들은 최순실이라는 귀신만 제거하면 박근혜라는 여종이 다시 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체제 자체에 귀신이 들려있다는 사실 말이다…사랑하는 자매·형제들이여, 공중권세 잡은 저들은 강해 보이고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이 초라하다.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자.”
 
영어·중국어·프랑스어 등 자신들이 배우는 9개국 언어로 선언문을 발표한 한국외대생들의 시국선언도 눈에 들어왔다. 평소 정치문제를 포함한 사회현실에 침묵하는 것으로 보였던 그들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그렇게 분노를 표현하고 있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을 지킬 수 있다." 프랑스 외교관이자 ‘마지막 레지스탕스’로 불렸던 스테판 에셀은 자신의 책 <분노하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이상들을 부디 되살리고 전파해 달라고.” 그것이 프랑스를 이끌어온 역사이기에 이 숭고한 유산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도 해당되는 말 아닐까.
 
최한영 정경부 기자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