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에 모인 20만 명의 군중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외쳤다. 성난 민심은 촛불처럼 타올랐다. 박근혜 정권 내부에서 일어난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가행진은 전국 곳곳으로 번져나갔고,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만 같은 살벌한 기운이 감지됐다. 이를 지켜보면서 230여 년 전 성난 프랑스 군중들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아네트를 처단하라’고 외치던 역사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프랑스 절대왕정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아네트.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된 루이는 뚱뚱한 몸집에 호인이었지만 수동적이고 무능했다. 그는 우유부단했고 정치적 사안이나 국민을 지배하는데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정치로부터 그가 얻는 즐거움은 미천했다. 이러한 루이가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었으니 프랑스 절대왕정의 종말은 예정된 것이었다.
마리 앙뚜아네트는 열네 살에 프랑스·오스트리아 간 동맹을 위해 한 살 위인 루이와 정략결혼을 했다. 그녀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루이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나 정치적 감각은 없었다. 사생활을 중시한 점은 왕비의 역할에 부합하지 않았다. 마리 앙뚜아네트는 왕비의 역할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했다. 매우 수직적인 사회에서 그녀는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있었고 제스처 하나하나는 공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궁정생활에서 도망쳐 베르사유의 별궁인 쁘띠 트리아농에서 하프를 연주하고 콘서트를 여는 것을 즐겼다.
혁명은 경제·사회적 변동뿐만 아니라 에피소드나 스캔들과 같은 우발적 사건에서도 초래된다. 프랑스 혁명도 직접적인 도화선은 귀족과 부르주아지의 대립과 이를 조정하지 못한 루이의 무능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그 유명한 ‘목걸이 스캔들’이다. 라 모트 백작부인을 비롯한 한 무리가 로앙 추기경과 보석상을 속이고 왕비를 사칭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편취한 사건은 마리 앙뚜아네트의 평판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사건 연루자들은 재판에서 왕비의 소행임을 주장했고, 프랑스 국민들은 그들의 말을 믿었다. 특히 법정공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궁정의 민낯은 결국 왕비에 대한 원성으로 폭발했다.
문제는 이러한 왕궁의 추태와 세간의 악평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측근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루이를 걱정해야 할 아우와 사촌들은 오히려 왕을 어떻게 퇴위시킬지를 궁리했다. 왕은 자기 마음속의 권력자로 자리 잡은 왕비와 무책임한 측근들의 계획대로 끌려 다녔다. 결국 루이와 마리 앙뚜아네트는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되었고 프랑스의 절대왕정은 종말을 고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여지없이 드러난 청와대의 민낯과 1780년대 베르사유궁의 모습, 그리고 박 대통령과 루이 16세의 정치역정이 비슷하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어린 시절을 구중궁궐 청와대에서 보냈고 스물 두 살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로 등극해 온갖 영예를 한 몸에 받은 박 대통령. 옆에서 보고 들은 것은 오로지 부패한 권력과 고압적인 권위주의 정치였으니 민주공화국의 정치적 감각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을 어떻게 대통령의 사유물로 여기고, 외로움을 달래주고 살림을 챙겨줬다는 이유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양도해 국정을 파행으로 몰고 갈 수 있단 말인가.
국가는 종교단체가 아니다. 부모를 총탄에 잃었다고, 외로워서 담장의 벽을 낮춘데 대한 회한의 눈물을 뒤늦게 흘린다고 해서 동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프랑스가 한국과 다른 점은 혁명 후 반혁명분자들을 철저히 처단하고 앙시앙 레짐(구체제) 청산에 전력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역사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은 역사적 과도기 마다 잘못을 범한 범법자들이 눈물로 호소하면 그만 용서해 주는 감성의 정치를 해왔다. 반역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고개를 들고 대한민국 곳곳에서 숨은 실세로 재등장했다. 우매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브레이크를 걸고 구체제 청산을 위한 절호의 찬스로 활용하려면 이번 사건을 성역 없이 수사해야 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