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최병호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순실씨의 여러 이권 사업에 개입해 범죄행위를 지원·방조한 것으로 속속 드러나면서, 전경련이 사실상 최씨 사조직으로 활동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전경련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 활동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최씨와 연관된 다른 사업들도 물밑 지원을 해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전경련이 정부에 제안하고 대통령이 관련 부처에 사업 추진을 독려하는 흐름도 유사하다. 과정의 중심엔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있다. 청와대 지시만 따랐다고 보기엔 전개도 치밀하다. 최씨와 청와대, 전경련 사이의 연결고리에 더 깊은 내막이 존재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는 양상이다.
검찰이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 등을 기소한 공소장을 보면, 전경련은 청와대 측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충당 계획을 별다른 저항 없이 수행해 왔다. 안 전 수석이 이 부회장에게 지시하고 전경련이 재단 설립 계획부터 기업별 출연금 배분, 재단 창립총회 회의록 등 서류 작성까지 도맡았다. 안 전 수석의 지시로 처음엔 삼성, 현대차, SK, LG, GS, 한화, 한진, 두산, CJ 등에만 접촉했다가 롯데, KT, 금호, 신세계, 아모레,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을 출연 기업에 추가시켰다. 전경련이 LS와 대림을 추천하기까지 했다. 재단법인 미르의 이사로 내정된 사람들을 출연기업 임원들이 추천한 것처럼 창립총회 회의록도 조작했다. 재단 자금을 유용할 의도가 엿보이는 기본재산 비율을 낮추는 작업도 전경련은 인지하고 있었다. 처음엔 반대했다가 나중엔 정관 등을 직접 고친다. “재계를 대변하는 전경련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최씨와 얽힌 다른 의혹들에도 전경련이 등장한다. 재계를 대변하듯 정책건의를 하지만 사실상 최씨 등을 도와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이 부회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설악산케이블카가 최씨와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이 평창올림픽이라는 큰 그림 속에 설악산 관광개발사업을 제안하고 이 속에 케이블카 건설과 산악승마장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환경부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등에 사업 추진을 재촉하는 한편, 정부내 사업 추진은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주도했다고 이 의원은 주장했다.
실제 박 대통령은 2014년 10월30일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올림픽 볼거리와 관련해 “설악산에 케이블카 사업도 조기에 추진이 됐으면 한다”며 “환경부에서도 다 준비가 돼 있는데 좀 빨리 시작됐으면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씨는 강원도에 보유한 부동산을 활용해 승마장을 건설하거나 케이블카 운영 사업에 개입하려 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 의원은 “최순실씨와 측근들은 평창올림픽을 통해서 이권을 챙기려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면, 설악산케이블카도 이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 계획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이 꾸준하게 시도해온 산악지역 개발 규제 완화도 최씨의 강원도 평창의 7만여평 땅 개발과 닿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경련은 2014년 6월 산악관광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산지와 초지에 승마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정부에 제안했다. 여기에 앞장선 것도 이 부회장이다. 올들어 7월엔 설악산 등에 레포츠 단지 등을 조성할 수 있게 하자며 특별법 제정을 건의했다. 최씨가 보유한 강원도 땅은 개발 제한 규제에 묶여 있어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규제 완화는 최씨에겐 직접적인 수혜다. 최씨는 국토해양부 문건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하며 상당한 시세차익을 거뒀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최씨 의혹과 얽힌 이 부회장은 정부 부동산 정책 심의위원회에 소속된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이 부회장은 법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이 부회장을 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는 계획이다. 국정감사에서 재단 출연이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라고 주장한 것을 위증이라 봤다. 공소장에는 이 부회장이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안 전 수석과의 통화내역 및 문자메시지 등이 저장된 휴대전화를 폐기하는 등 증거인멸죄도 포함됐다.
전경련은 해체 압박을 받고 있다. 재계는 그러나 유지될 것이란 쪽에 무게를 싣는다. 이전에도 전경련이 사과하는 정도로 비슷한 위기를 넘겨왔기 때문이다. 재계와 정부를 연결하는 창구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전경련 해체에 대한 공개질의를 기업들에게 두 차례 시도했지만 묵묵부답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씨의 사조직처럼 행동해온 전경련이 부패를 청산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회원사들의 탈퇴행렬이 이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전경련에서 (기부금을)내라고 하면 내는 게 오래된 관행이었다”며 “또 모금하자고 하면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영·최병호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