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 온 집은 산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다. 거실로 나와 창밖을 보면 아파트를 둘러싼 크고 작은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산들과, 추위 속에 피어있는 노란 감국을 볼 때면 어떤 아늑함을 느끼곤 한다. 시린 바깥과는 다른 따뜻한 공기에 몸이 저절로 노곤해지는 것이다.
고민은 이사를 오고 일주일 뒤부터 시작되었다. 벌레들이었다.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잡으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노린재, 꼬리 끝이 주황빛인 작은 지네, 전등을 향해 산만하게 날아드는 나방과 손톱보다도 작은 무당벌레. 도대체 어디서 들어오는 것일까. 크게 벌어진 방충망도 메우고, 창문도 꼭꼭 닫았지만 벌레들은 계속 어디선가 들어왔다.
집 안의 안락함을 아는 것일까. 추위와 바깥의 고단함을 아는 것일까. 그 고단함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집 안에 벌레들을 들일 수는 없다. 벌레들이 집 안으로 들어올 만한 곳을 집요하게 막았고, 창문 앞에는 살충제가 든 캡슐을 놓아두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벌레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떠 거실로 나와, 굳게 닫힌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주스를 마셨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동산을 눈으로 훑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또 벌레였다.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눈에 띄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경질이 일어났다. 벌레는 방충망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작은 구멍에 여섯 개의 다리를 차례로 끼워가며 위태로운 모양새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신경질은 화로 변모했다.
방충망 앞의 유리창을 벌컥 열어 재꼈다. 벌레는 여전히 방충망을 오르고 있었다. 계속 올라가다보면 이리로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방충망 위로 열심히 기어오르는 벌레를 향해 퇴치제를 분사했다. 퇴치제의 세기를 이겨내지 못한 벌레는 방충망 아래로 나뒹굴어 떨어졌다.
그날 오후, 창문 밖으로 굴러 떨어진 벌레와 똑같은 모양새의 것을 집 안에서 또 발견했다. 벌레는 뒤집어진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애써 들어왔으면 기어 다니기라도 할 것이지. 한심하게. 끔찍해서 맨 손으로는 잡을 수 없고, 휴지를 가지러 가기는 귀찮아서 뒤집어진 채로 벌레를 놔두었다. 몇 시간 뒤 그 자리에 와보니 벌레는 뒤집어진 그대로 미동이 없었다.
사진/바람아시아
창문 밖으로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어둠 속에서도 차가운 안개가 뿌옇게 산허리를 감싸는 것이 또렷이 보였다. 자격증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급하게 문제집을 풀어나갔다. 문제 하나를 푸는 데도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훗날의 나를 생각하면 차마 문제집을 덮을 수가 없다. 내 맞은 편, 적막함이 불편해 틀어놓은 티브이는 정신없이 세상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 사람들. 사리사욕과 상상을 초월한 부정부패, 그 사이에서 상처 입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루어내는 사람들과, 확실치 않은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20억대 아파트를 소유한 세 살 아이와 고시원에서 찬밥에 간장을 비벼먹는 20살 대학생. 가차 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고 쓰러진 노인, 노란 리본, 그리고 거리로 나온 수 만개의 촛불들. 그 모든 것들이 퍽 낯이 익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두운 새벽, 벌레 한 마리가 빛을 찾아 집 안으로 들어왔다. 사방이 어두운 곳에 있다가 형광등의 밝은 빛을 보니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것은 산만하게 전등 주변을 활개치고 돌아다녔다. 평소 같았다면 벌레 퇴치제를 가져와 그것을 향해 분사했겠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열심히 날아다니지만 피곤이 묻어나는 날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소파 위에 몸을 뉘었다. 형광등에 비친 벌레의 그림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