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배달 음식 주문 어플 ‘배달의 민족’이 ‘밥값은 1/N’ 티셔츠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배달의 민족’ 은 해당 제품의 사용 예로 소개팅을 언급하며 '남의 밥값을 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남성분에게 달콤한 소개팅의 유혹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여성 혐오 논란을 지적했고, 회사는 이와 관련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이 티셔츠에는 ‘밥값은 1/N’ 말고도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바로, ‘세탁법은 엄마에게 물어보세요.’ 다
딱 봤을 때는 위트 넘치는 문구로 보일 수도 있다. 드라이 클리닝을 하라느니, 50도 물에서 손 빨래를 하라느니, 햇볕에서 말리라고 하라느니 등의 긴 문구와 직관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그림 몇 개 있는 세탁 법 설명과 달리 아주 간단하게 ‘엄마에게 물어보세요,’ 라니! 너무나 유머러스 하지 않은가. 길기만 길고 별 실용성은 없어 보이는 기존의 세탁 설명 문구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자기 옷의 세탁 법을 ‘엄마’ 한테 물으라고 할까. 세탁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삼는 세탁업체 직원도 아니고, 뭐든지 물어보라는 네이버 지식인도 아니고, 그 옷을 만든 회사도 아니고. 하물며 세탁기를 파는 LG나 삼성도 아니고. 왜 갑자기 뜬금 없이 ‘엄마’를 소환할까
인류가 지구에 정착한 날부터 지금까지, 사회에서 ‘엄마’는 가사노동자로 간주되어 왔다. SBS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미운 우리새끼>는 이러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미운 우리새끼>는 사회에서 노총각으로 인식되는 남자연예인의 생활을, 그 연예인의 어머니가 VCR로 시청하며 패널과 이야기를 나누는 포맷으로 진행된다. 자신의 아들이 청소를 하지 않고 너저분하게 살거나, 밥을 제 때 챙겨먹지 않고 인스턴트음식만을 먹는 영상을 보며, 어머니는 말한다.
“저러니까 빨리 색시를 만나서 결혼을 해야지.”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아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요리 해 줄 여성이 나타나길 바란다. 누가 봐도 아들이 직접 할 수 있게 보이는 데도, 아들의 일을 대신해 줄 색시를 필요로 한다.
불루마테인(Bluematein)은 게이&레즈비언 커플은 직장이 안정적이지 못 한 사람이 가사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말했다. 동거하는 커플의 여성도 남성에게 집안일의 분배를 당당하게 요구한다. 반면, 결혼한 커플의 부인은 혼자 가사노동을 책임지고, 당당하게 집안일의 분배를 요구하지조차 못 한다. 유부녀는 능력,관심사 그리고 사정에 관계없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사노동을 떠맡는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족 임금 이데올로기의 붕괴는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줬지만,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주진 못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일·가정 양립지표'에 따르면 맞벌이 여성은 하루 3시간이 넘게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반면, 맞벌이 남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40분에 불과하다. 이는 가사노동이 여성의 전유물임을 보여준다. 남성에게 ‘집안일’은 도와준다는 개념일 뿐, 자신의 몫이라고 인식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사노동의 불공정한 분배를 당연시 여기는 인식은 단순히 가정 내에서의 불평등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대구 주류업체 ‘금복주’는 결혼한 여성에게 퇴직을 강요해 논란을 샀다. 그렇다고 퇴직을 강요하지 않는 회사에 근무하는 결혼한 여성이,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미쉘 부딕(Michelle J. Budig)에 따르면,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아이가 있는 남성 매니저는 없는 남성매니저보다 아이 한 명당 2000-5000달러 더 받는다. 반면 여성 매니저는 아이 한 명당 2000-7000달러 덜 받는다. 즉, 노동시장 밖에서 만들어진 고용주의 고정관념이 남녀 불평등을 공고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모든 여성은 미래의 어머니로 인식되고, 이에 따라 무급 노동자로 평가 절하된다. 이는 여성을 이차적 노동자로 간주하게 만들고 차별을 공고화한 .여자는 가사노동의 전임자라는 사회적 전제와 기업 구조로 인해 여성의 무능은 구조화된다. 이 모든 차별과 편견은 여성만이 가사노동을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여성은 가사노동자라는 이유로 수 없이 많은 장애물에 부딪혀야만 한다.
이렇듯 갈 길이 멀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사실 가사‘노동’으로 집안일이 지칭된 역사는 길지 않다. 1960년대 이후 여성의 일을 재평가하자는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집안일에 대한 적극적인 개념화 운동이 일어남으로써, 가사‘노동‘의 개념화가 가능했다. 물론 아직도 가사노동은 평가 절하되고 여성만의 노동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노동’으로 지칭되지도 못했었던 60년 전을 고려하면 이도 크게 발전한 사회다.
어떤 옷은 드라이 클리닝을 해야 하고, 어떤 옷은 50 도의 물에서 손빨래를 해야 하고, 어떤 옷은 햇볕에서 말려야 한다. 세탁 법은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해서 가끔은 귀찮기도 하다. 그래도 오래 입기 위해서 올바른 세탁 법은 필수다. 이렇듯 가사노동은 고되고 귀찮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회사들은, 옷에 올바른 세탁 법 설명서를 부착해 둔다. 읽기 귀찮지만, 읽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어떻게 세탁을 해야 하는 지 알 수 있다.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다면,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네이버 지식인에 쳐보면 된다. 어떤 옷이든, 어지간한 옷에 대한 세탁 법은 다 있다. 없는 것 같으면 직접 어떻게 세탁해야 하냐고 내공 100을 걸고 물어볼 수도 있다. 답변이 올라오지 않으면 그 옷을 제조한 회사에 전화하면, 금방 안다. 회사에 전화할 수가 없다면 근처 세탁소에 가보자.
답은 엄마가 아니다. 엄마라는 이유로 그가 가사노동의 전문가 일 리 없다.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은 지금이라도 좋으니 빨리 버리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