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영택기자]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된 정황들이 연이어 터져나오면서 중대 기로에 섰다. 9일 열릴 포스코 정기이사회에서 연임이나 사임 뜻을 밝혀야 할 입장이지만, 본인 뜻과 달리 연임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오히려 향후 특검 수사상황에 따라 불명예 퇴진을 당할 수도 있는 위기다. 특히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회장감이 아니었다"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증언까지 나와 대외적 평판까지 급속히 악화된 상태다.
8일 포스코에 따르면 9일 열리는 정기이사회가 권 회장의 연임이 판가름 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권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포스코 규정에 따르면 회장 선임 3개월전 연임 혹은 퇴임 의사를 이사회에 전달해야 한다. 때문에 이날 열리는 정기 이사회에서 권 회장은 거취를 밝혀야 한다. 권 회장은 그간 공공연히 연임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 바 있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각종 의혹이 끊임없이 터지면서 본인의 희망과는 달리 점점 연임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권 회장은 지난 2014년 3월 포스코 수장 자리에 오를 때부터 자격논란에 휩싸였다. 포스코 회장은 포항제철소 등 현장 경험이 있는 등기이사여야 한다는 것이 포스코 내부의 기본적 인식이었다. 그런데 포항산업과학기술연구원(RIST) 원장 출신인 권 회장은 이러한 자격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권 회장은 지난 1986년 입사 후 주로 기술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RIST 원장을 지냈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직책은 포스코 전체 직급으로 치면 상무급에 불과하다.
권오준 포스코 선임 및 비선 관련 의혹 관계도. 자료/뉴스토마토
이와 관련해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청문회에서 "상무급에 불과한 권오준 회장이 일약 회장이 됐다"며 "비선실세가 관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인데, 감도 안 되고 자격도 안 되는 권오준 회장을 세운 외부 비선실세는 누구인가"라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그 외부 실세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최순실씨라는 제보가 있다"면서 "김 전 실장이 조원동 당시 수석에게 권오준이 어떻겠나고 물어봤고, 조 전 수석이 '알아보니 회장감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자 다시 '지시대로 따르라'고 윽박질렀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최명주 포스코기술투자 사장과 포스코 내 CEO 승계프로그램 담당이었던 김응규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사장에게도 "권오준 회장을 세워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에 대한 사정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도 거세 특검수사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한 언론은 이날 포스코 고위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권 회장이 취임 후 첫 포스코 인사안을 청와대에 팩스로 보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권 회장이 공식 인사안을 발표하기 전 비서실을 통해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실과 정호성 당시 청와대 부속비서관실에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권 회장이 취임 후 의사결정을 할 때 “내 뜻이 아니다”, “윗선의 뜻”이라고 자주 얘기해 포스코의 의사결정에 청와대가 깊숙이 연관됐음을 자인했다는 주장도 보도됐다.
석연치 않았던 포스코 회장 최종 면접 과정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당시 경쟁자에겐 사전 예고도 없이 영어 인터뷰가 갑작스레 진행돼 권 회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권 회장의 경우 캐나다 윈저대에서 석사,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영어에 능통하다. 반면 권 회장과 함께 최종 회장 후보에 오른 정동화 전 부회장은 갑작스런 영어 면접에 당황해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부회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통역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상당히 당황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권 회장은 취임 과정 뿐 아니라 이후 행보에서 권력실세들에게 특혜를 주는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최순실씨의 하수인 노릇을 한 차은택씨가 포레카 지분을 강탈하려한 범죄와 관련해 지난 11일 검찰조사를 받았다. 지난 2014년 3월 취임 후 경영정상화를 위해 광고대행 계열사인 포레카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그해 말 광고대행사 컴투게더를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는데, 차씨 등이 포레카를 강탈하려 한 과정에 포스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의혹 대상이다. 포스코가 미르·K스포츠 재단에 49억원을 출연하는 과정에도 외압의혹이 일고 있다. 당시 이사회 의장이었던 박병원 한국경총 회장이 출연금 관련 이사회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며 비선실세의 입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출연했음을 시사했다.
포스코는 재계 6위의 기업이지만,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오명을 받으며 항상 정경유착의 흑역사를 써왔다.재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민영화됐지만,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관치 경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그동안 관행에 비춰볼 때 포스코 CEO 선정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그는 "권 회장의 경우 검찰에 이어 특검 조사까지 불가피해 보인다"며 "이런 상황에서 연임하겠다고 욕심을 부린다면 회사 안팎의 거센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택·박현준 기자 ykim9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