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거듭 견제하고 나섰다. 미국의 잇따른 제동에 산업 육성 강화에 힘쓰고 있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난항을 겪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던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전쟁에 우선 한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더구나 최근 D램 가격 상승 등으로 업계의 표정도 밝다.
중국 푸젠그랜드칩투자펀드(FGC)는 지난 9일 홈페이지에 독일 반도체기업 '아익스트론'의 인수 계획이 무산됐다고 발표했다. 푸젠 측은 "인수 약정상 조건을 실현할 방법이 사라져 계약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밝혔다. 푸젠의 인수 포기 사유로 미국 정부의 반대를 들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일 푸젠에 아익스트론 미국 자회사 인수 계획을 "완전히 영구적으로 포기할 것"을 명령했다. 미 재무부도 "아익스트론의 기술은 군사적 용도가 있다"며 "외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 국가 안보를 해칠 수 있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있다면 대통령의 권한으로 인수를 중단하거나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중국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 유니스플렌더는 2월 미국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업체 웨스턴디지털을 통해 세계 낸드플래시 업체 3위인 미국 샌디스크를 우회 인수하려던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미국 규제당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인수 거래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하면서 칭화유니그룹이 인수 철회를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견제로 거듭 반도체기업 인수 등이 실패로 끝나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중국 공업신식화부는 2014년 매년 자국 반도체 매출을 20% 이상 성장시키며 오는 2020년에는 9300억위안(167조4000억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 자국 반도체사업 투자를 대폭 늘리는 한편 미국·대만 등 해외 반도체기업의 인수합병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의 반도체를 둘러싼 패권 전쟁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중국의 반도체 진출은 더욱 더뎌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트럼프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가 '중국 국유기업은 미국 기업을 인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까지 내놓았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 등으로 반도체산업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협력에 제동이 걸리면서 중국의 반도체기술 확보가 늦어지고 진입 시기도 더뎌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굴기를 경계하던 국내 반도체 업계는 우선 안도하는 분위기다. 중국이 반도체산업을 국가육성산업으로 삼고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고 있지만, 국내 업체들과 기술격차가 커 경쟁력 확보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양사 합계 점유율이 74%대 수준을 기록하면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모바일 D램 시장에서도 합계 점유율이 87%에 이른다. 더구나 최근 반도체시장의 훈풍에 업계의 표정도 밝다. 지난달 D램 가격은 전달보다 6% 상승하면서 5개월째 상승세다. 반도체 개선세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4분기 실적도 청신호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국내 업체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기술투자 등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전자의 12기가비트 모바일 D램. 사진/삼성전자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