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곶 됴코 여름 하나니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입력 : 2016-12-19 오전 8:00:00
역대 최고로 다사다난 했던 2016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병신년을 돌아보면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특히 정치분야는 우리 국민의 마음을 어지럽고, 힘들고, 또 좌절하게 만들었다. 올 초 교수신문은 2016년을 맞이하는 말로 "곶 됴코 여름 하나니"를 선정한 바 있다. 조금 낯설지만 순 우리말로 "꽃이 무성하고 열매가 가득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말 그대로 2016년 한 해 동안 모든 국민이 즐겁고, 결실이 가득한 한해를 보내기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그러나 현실은 이 같은 바람과 달리 냉혹하기만 했다. 1월부터 북한이 수소탄 개발에 성공했다며 한반도 정세를 급랭시키더니 2월에는 남북경제교류의 핵심이자 마지막 안전핀이었던 개성공단마저 폐쇄됐다. 이후 4.13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국면이 열리면서 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심판까지 내려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혼란스런 정치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종국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만천하에 드러나며 대한민국 전역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국가적 대 위기가 발생하고 말았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자리에서 피의자로 낙인 찍혔고, 국민의 뜻을 등에 업은 국회로부터 탄핵돼 직무가 정지됐다. 재벌들은 1988년 5공 청문회 이후 28년 만에 다시 한 자리에 모여 국회의원들의 갖은 질타와 비난을 받았고,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준비로 분주하고, 촛불을 든 국민들은 당장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있다. 이렇게 혼란스런 상황에서 일부 정치인들은 이번 기회에 개헌을 한다며 또 다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교환경도 국내정치의 어두운 그늘만큼 암울하기만 하다. 미국 대통령으로 재벌출신의 정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는 예측할 수 없는 미국의 미래와 직면했다. 사드배치 문제로 관계가 틀어진 중국은 당장 한류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공공연히 하고 있고, 더불어 대북공조까지도 흔들리고 있는 모양새다. 일본은 극우정치인 아베 총리가 장기집권을 예고하며 독도, 교과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망언을 일삼는 것은 물론, 평화헌법을 무력화 하는 등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변질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내년은 힘든 한해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13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9월 예상치 2.8%보다 0.1% 내린 2.7%로 하향 조정했다. 그 근거로 한국경제의 성장세가 취약한 외부 환경, 기업구조조정 여파, 정치적 불확실성 고조 등을 들고 있다.
 
특히 우리 경제의 실핏줄인 중소기업들이 예상하는 경제 전망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779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년 경기 전망을 보면 내년 경기가 올해와 비슷하거나 악화될 것이라는 의견이 87.8%에 이른다. 국민경제와 밀접한 부동산경기도 내년 전망은 정책적 불확실성과 금리인상, 저성장 국면에 따른 경기 침체로 인해 어둡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암울한 현실과 미래 전망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박 대통령의 반 헌법적 일탈행위로 경제·외교·정치적 현안들이 모두 주춤하고, 해외언론이 대한민국의 탄핵정국을 ‘강아지 게이트’라며 조롱할 정도로 국격이 땅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희망은 바로 병신년의 끝자락에 보여준 우리 국민의 위대한 촛불시민혁명에 녹아있다. 촛불시민혁명은 앞서 말한 모든 부정적인 전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저력을 상징한다. 연인원 600만 명이 아무런 사고 없이 평화적인 집회를 통해 부패한 정권을 끌어 내린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시민 권력의 승리다.
 
물론 현재 촛불시민혁명은 탄핵재판의 결과가 남아 있는 미생의 승리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민주적 역량만으로도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누구인지 헌법에 명시된 권력의 힘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국가적 위기 때마다 난관을 극복하고 희망의 미래를 열어온 것은 우리 국민이다. 아무리 대내외적인 어려움이 산적해 있더라도 촛불시민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우리 국민들의 저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병신년을 보내는 12월, 조금 늦었지만 "곶 됴코 여름 하나니"라는 바람이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보여준 국민의 저력을 밑거름 삼아 내년엔 온 국토에 만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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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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