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2016년이 지났다. 국제적으로는 영국의 브랙시트와 서유럽의 각종 테러발생,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권력이동 등 큼직한 사건이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스캔들이 대통령탄핵으로 이어졌고 정치권 또한 이합집산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한해 가장 관심을 불러일으킨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y Forum)에서 논의된 이 후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다양한 기대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강의와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차원의 대책이 잇따르고 기업의 금년 업무계획에는 "4차 산업시대에 대응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다.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4차 산업육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혁명"이라는 용어의 파급력에 있다. 혁명(革命, Revolution)은 종래의 관습, 제도 등을 단번에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세운다는 뜻이다. 과거 수차례의 산업혁명은 인류에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 말에 의한 운송은 자동차로 대체되고 수만리 떨어진 곳의 소식은 실시간 스마트폰이 해주고 있다. 세 차례의 산업혁명은 엄청난 부(富)와 편익을 제공해왔다. 생산자가 신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고 소비자는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접할 수 있었다. 4차 산업은 이보다 더 큰 편익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두 가지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이의 해결이 성공여부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첫째는 일자리문제이다. 정보통신기술은 제조영역의 작업에서 사람의 역할을 일부가 아닌 전부 즉, 100% 대체할 수 있다. 무인자동차, 드론, 로보어드바이저, 3D프린터 등은 인간의 통합적이고 지적인 영역까지도 수행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ICT의 제조업융합은 급속하고 광범위한 자동화를 통해 작업자의 역할을 대체하므로 필연적으로 대량실업문제를 불러일으킨다.
200년 전 영국 노팅엄에서 시작된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시기에 직물기계의 급격한 보급과 경제적 불황으로 서민생활이 어려워지자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은 기계’때문이라며 전국적인 기계파괴운동을 벌였다. 그 시절에는 인구증가와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산업부흥기여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 갔지만 지금의 4차 산업은 충분한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미 백악관의 보고서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Artificial Intelligence, Automation, and the Economy)'에 따르면 인공지능기술은 여러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미국인의 생계를 혼란시키고 임금, 교육, 직종, 지역 간의 불평등이 야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앞으로 20년간 로봇이 1억 3,700만 명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예측했다. 선진국에서조차도 3~4년 간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4차 산업의 특성상 많은 분야에서 작업의 인간대체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이며 설사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도 그 숫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정부대책에 따르면 현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49.7%의 일이 자동화되어 일자리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으로 보여 진다. 4차 산업과 관련하여 2030년까지 460조원의 총 경제효과와 80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하지만 그 실효성은 의문이다.
두 번째 고민은 산업경쟁력의 격차이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분야에서 선진국에 견줄만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까? 4차 산업은 미국이나 유럽의 앞선 나라들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상태에서 글로벌 경쟁이 선포된 패러다임이다. 한국이나 후진국이 불리한 경기이다. 2년 전 OECD가 발표한 제조업혁신현황에 따르면 독일이 83%, 프랑스 56%, 일본 50%, 영국 48%인 반면 한국은 38%에 불과하다.
산업연구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4차 산업 관련 20개 기술의 국제경쟁력에서 EU 91.4점, 일본 85.7점이나 한국은 79.6점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공지능과 스마트카분야에서는 미국과 유럽에 훨씬 못 미치고 있어 선진국을 따라가려면 몇 배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충분한 여유자원이 있는가도 문제이다.
따라서 4차 산업의 추진은 우리의 강점을 살려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앞선 정보통신네트워크, 신기술벤처창업, 세계최고수준의 GDP대비 R&D투자율, 높은 교육수준 등 강점을 살려야 한다. 나아가 통합적 변혁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경쟁력, 창의적 인재, 정치적 안정성, 반부패투명성, 규제해소 등의 부족한 인프라를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4차 산업에 장밋빛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경쟁 논리와 특정산업분야나 기업의 이해도 중요하지만 일반국민은 물론 중소기업을 포함한 사회전체의 이해와 정책적 합의를 마련하고 이를 전제로 지속적인 사회발전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4차 산업의 추진에 따른 혜택과 피해의 당사자가 다르므로 이를 감안한 스마트한 정책이 필요하다. 과거의 지원만능의 정책을 답습하며 4차 산업 신드롬에 휩싸이면 국가자원은 고갈되고 사회갈등과 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각 부처가 우후죽순의 정책을 펴기보다 명확한 조정기구(Control tower)에 의한 통합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의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