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지난해 한·중 사이의 각종 정치적 이슈에 휩쓸렸던 화장품·패션 업계가 올해에는 중국 현지화를 통한 사업 안정화를 꾀할 계획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나온 중국 정부의 유커(중국인 관광객) 제한, 한류 금지령 등 보복성 조치에 어려움을 겪었던 업계는 올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얼어붙은 한·중 관계가 풀어질 수 있다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다만 중국 정부의 자국 산업 보호 정책과 중국 시장 내의 경쟁 심화, 예측하기 힘든 정책 변수 등을 고려하면 여전히 조심해야 할 점은 많다는 지적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 화장품 시장은 전년보다 11% 커진 27조5000억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삼성증권은 내년 내수 화장품 시장이 전년대비 4% 성장할 때 면세 채널은 14%, 수출은 2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면세점 매출과 수출 증가율은 여전히 높긴 하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반토막에 불과하다. 지난해 면세 채널 매출은 27%, 수출은 55% 성장한 것으로 추산됐다.
면세점 매출 성장률이 꺾이는 것은 유커 감소 탓이다. 유커 증가율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크게 줄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70.2%를 기록했던 유커 증가율은 9월 22.8%, 10월 4.7%, 11월 1.8%로 곤두박질쳤다. 8월의 높은 증가율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따른 기저효과였다. 올해 예상 중국인 관광객은 870만명 수준으로 전년대비 7% 증가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수출도 중국·홍콩 시장의 수입통관 규제 강화, 로컬 기업의 빠른 성장 등으로 성장세가 둔화될 전망이다. 다만 역직구 화장품에 대한 위생허가 의무화 시점이 오는 5월11일에서 연말로 늦춰지면서 중소업체의 숨통은 당분간 트일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 까지는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액션이 멈추겠지만 자국 화장품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비관세장벽 강화는 계속되고 있다"며 "중국 영업망과 유통망을 정비하고 현지화 마케팅에 집중하는 곳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면세점, 역직구 등을 통해 성장한 후발주자들은 지난해부터 현지화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달팽이크림으로 중국에서 대박을 친 잇크스킨은 올해부터 모회사 한불화장품의 중국 공장을 통해 현지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얼굴에 바르는 아이크림으로 유커에게 인기를 끈 A.H.C도 최근 중국 법인 설립을 완료했다.
국내 패션시장은 올해 전년대비 3.3% 성장한 39조3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며 중국에서 새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한·중 FTA 발효로 여성복에 대한 관세가 16%에서 6.4%로 대폭 낮아지고 남성복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드는 등 기회가 될만한 요소도 많다.
삼성물산은 중국에 에잇세컨즈의 신규 매장을 1~2곳 더 오픈하는 방안을 타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 중국 상하이에 문을 연 에잇세컨즈 플래그십 스토어는 오픈 2달만에 6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적이라는 내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한류스타인 지드래곤을 모델로 쓰고 있어 한한령과 관련해 새로운 규제가 가시화될 경우 영향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지난해 중국에 지컷을 론칭한 신세계인터내셔날도 올해 매장을 본격적으로 늘리는 등 중국 사업을 강화할 예정이다.
올해 중국에 진출하는 한섬과 신원은 아예 현지기업과 손을 잡았다. 현지기업과의 파트너십은 유통망 확보와 마케팅을 비롯해 정치적 이슈를 비켜가는 데 도움이 된다. 한섬은
SK네트웍스(001740)에 맡겼던 시스템과 시스템옴므의 중국 판권을 가져오며 항저우실업유한공사를 현지 유통 파트너로 선정했다. 신원은 중국 진잉그룹과 만든 합자법인을 통해 올 가을 새 남성복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다.
다만 중국 내의 높아진 경쟁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 동안은 중국이 한국에 비해 트렌드가 뒤쳐진다고 보고 2차 판매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글로벌 기업의 진출과 로컬업체의 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며 이같은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진출한 소규모 패션업체 중 많은 곳이 철수할 계획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며 "중국 패션 시장은 이미 글로벌 시장으로 상품력, 기획력, 가성비가 승패의 관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코리아세일페스타 기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서울 시내 한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